동경잡기(東京雜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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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670년(현종 11)에 간행하고, 1711년(숙종 37)에 중간(重刊)한 것을 1845년(헌종 11)에 성원묵(成原默)이 증보하여 중간한 경주의 지지(地誌)다.

개설

『동경잡기(東京雜記)』는 1670년에 간행된 경상도 경주부(慶州府)의 지리지인데, 1711년에 재간하고, 1845년에 중간(重刊)한 지지다. 목판 크기는 초간본과 다르지만, 항수(行數)와 자수(字數)를 똑같이 맞추어 새로 목판을 새겨 인출한 것으로, 3권 3책이다. 다만 표지 서명이 ‘동경잡지(東京雜誌)’이고, 3책을 천(天)·지(地)·인(人)으로 구분한 것은 초간본과 다르다. 권말에 1711년에 경주부윤(慶州府尹)남지훈(南至熏)이 신라 천년의 사실이 인멸될까 염려하여, 다시 간행한다는 뜻을 밝힌 지(識)가 실려 있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도읍 서라벌로, 고려 초기에 경주라고 한 뒤 3경 중 하나인 동경(東京)으로 중시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경상도의 큰 고을로 경주부(慶州府)가 되었고, 안강(安康), 기계(杞溪), 자인(慈仁) 등 4현(縣)과 부곡(部曲)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또 일찍부터 학문이 번성한 곳으로 이름이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은 초간본 『동경잡기』와 같다.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살필 수 있는 기록이 풍부하게 실려 있고, 그에 관련된 시문(詩文)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1669년(현종 10) 편찬 당시의 경주부의 행정, 경제 관계 상황을 전해주는 내용과 호구(戶口)와 전결(田結)의 수치들이 실려 있고, 특히 역대 다양한 인물에 대한 기록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본서는 경주에 대한 종합적 역사지리지다.

편찬/발간 경위

원래 『동경잡기』는 1669년 경주부윤으로 민주면(閔周冕)이 향중(鄕中) 인사인 이채(李埰)·김건준(金建準) 등과 함께 편찬, 간행한 경주부 읍지(邑誌)다. 책 이름은 고려시대 경주가 동경으로 불리던 것에서 붙여졌다. 민주면 등은 1669년부터 1670년까지 약 1년여에 걸쳐 3권 3책의 『동경잡기』 편찬을 완료했다.

이 책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1, 경주부의 내용과 항목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민주면 등은 이를 토대로 하여 이전 사서를 요약해서 발췌하는 방식으로 책 내용을 구성했다. 여기에는 그들이 인용한 문헌 자료가 본문 곳곳에 충실히 기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이 책의 체제를 구성함에 있어서,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地理志)」와 다른 지역 읍지를 참고해,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항목을 대폭 보완했다.

민주면 등은 책을 편찬하면서, 기존 사서에서 이용한 항목에 별도로 추가할 내용이 있을 경우 반드시 ‘신증(新增)’을 표시함으로써 구분해 두었다. 다만 『동경잡기』에서 새롭게 추가한 항목에서는 이를 표시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신증’의 내용과 기존 사서에 나오지 않았던 『동경잡기』만의 독창적인 항목은 곧 민주면 등이 편찬 당시에 포함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총 세 권으로 되어 있다. 각 권에 마련된 항목은 모두 합쳐, 49항목에 달한다.

서지 사항

3권 3책(204장: 제1책 68장, 제2책 73장, 제3책 6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1711년 판)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반곽(半郭)은 19.3×17.4cm이다. 10행 16자의 반엽(半葉), 주단행(註單行)을 갖추고 있고, 규장각,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동경은 고려 때 경주의 별칭이다. 작자 미상으로 전부터 전해오던 『동경지(東京誌)』를 1669년(현종 10)에 민주면이 이채(李採) 등 향중 인사와 함께 편집·보완하여, 『동경잡기』라고 개칭하여 간행하였다.

이것을 1711년(숙종 37) 남지훈(南至熏)이 첨보(添補)하여 재간(再刊)하고, 1845년(헌종 11) 성원묵이 다시 증보, 정정하여 중간하였다. 1910년 조선고서간행회(朝鮮古書刊行會)가 성원묵의 판본을 인쇄본으로 간행하였고, 1913년 최남선(崔南善)이 주관하던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가 이것을 또 활자본으로 중간하였다.

이 책은 책머리에 목록이 있고, 권1에 진한기(辰韓紀)·신라기(新羅紀)·경주지계(慶州地界)·건치연혁(建置沿革)·관호연혁(官號沿革)·속현(屬縣)·진관(鎭管)·속임(屬任)·인리(人吏)·노비(奴婢)·읍명(邑名)·성씨(姓氏)·풍속(風俗)·산천(山川)·승지(勝地)·토산(土産)·성곽(城郭)·관방(關防)·봉수(烽燧)·궁실(宮室)·창고(倉庫)·학교(學校)·역원(驛院)·교량(橋梁)·사묘(祠廟)·능묘(陵墓)·기우소(祈雨所)가 있다.

권2에 불우(佛宇)·고적(古蹟)·수(藪)·호구(戶口)·군액(軍額)·전결(田結)·제언(堤堰)·각방(各坊)·각동(各同)·명환(名宦)·인물(人物)이 있고, 권3에 우거(寓居)·과목(科目)·음사(蔭仕)·효행(孝行)·우애(友愛)·충의(忠義)·정렬(貞烈)·기예(技藝)·서적(書籍)·제영(題詠)·잡저보유(雜著補遺)·이문(異聞)이 있으며, 권말에 남지훈과 성원묵의 발문이 각각 실려 있다. 조선광문회의 활자본에는 책머리에 ‘동경잡기간오(東京雜記刊誤)’가 첨부되어 있다.

이 책은 신라의 고도 경주의 읍지라는 점에서 다른 읍지에 비해, 신라 시대의 사실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신라기·불우·고적·인물 조항이 그 예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편목을 토대로 하면서, 조선 후기 일반 읍지의 항목을 많이 설정하였다. 각방·각동 조항은 경주부의 읍·면·리·동의 구획과 면리임(面里任)의 명칭 및 수령(守令)의 하부 행정체계를 구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당시 영남 지방에 연분서원(年分書員)의 관할구역으로서의 ‘동(同)’의 구획을 살필 수 있다. 특기할 사항은 신라기조에는 신라 건국에서 멸망까지의 역사를 본기형식(本紀形式)으로 기록하였다. 호구조는 기유식(己酉式)을, 전결조는 갑술양안(甲戌量案)을 각각 따르고 있다. 제영조에는 ‘회소곡(會蘇曲)’을 비롯한 신라의 가곡(歌曲)이 많이 실려 있고, 이문조에는 ‘연오랑세오녀(延烏郎細烏女)’ 등의 신라의 설화·전설·기담(奇談)이 실려 있다.

전체적으로 군치(郡治)에 중요한 장시(場市)·전세(田稅)·균세(均稅)·대동(大同) 등의 경제 조항이 누락된 반면 인물 관계의 문화적 내용의 비중이 크며, 시문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신라· 고려시대로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는 경주의 역사와 사적, 도시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 김치우, 「「東京雜記」 書籍條의 書誌的 分析」, 『서지학연구』 제22집, 한국서지학회, 2001.
  • 박주문, 「조선중기 慶州지역의 효자·열녀-『東京雜記』를 중심으로」, 『사학연구』 제58·59호, 한국사학회, 1999.
  • 심재기, 「한국(韓國)의 명문순례(名文巡禮)-민주면(閔周冕)의 동경잡기(東京雜記)」, 『한글한자문화』 120권,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2009.
  • 유부현, 「「東京雜記」의 書誌學的 硏究」, 『서지학연구』 제7집, 한국서지학회,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