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곡집(獨谷集)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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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독곡집 |
한글표제 | 독곡집 |
한자표제 | 獨谷集 |
분야 | 문학 |
유형 | 서명 |
지역 | 한문 |
시대 | 조선 |
왕대 | 세조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성석린 |
간행처 | |
간행년일 | 1456 |
권책수 | 2권 2책 |
사용활자 | 목판본 |
표제 | 독곡집(獨谷集) |
소장처 | 일본 봉좌문고, 고려대학교 도서관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독곡집(獨谷集) |
이 책은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인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 1338~1423)의 문집이다.
개설
이 책은 독곡 성석린의 문집으로서 서문은 완전히 누락되었고, 권상의 첫 번째 장과 행장의 맨 뒷장도 훼손이 심하여 보존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중간에 누락된 장이 없고 글자 획의 결손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인출 시기가 비교적 이른 것으로 판단이 된다. 이 책은 평양에서 간행된 것이 초간본으로, 현재 일본 봉좌문고에 완질이 있는 것으로 확인될 뿐 국내에는 전존하는 본이 없다. 따라서 조선 초기 간행된 문집으로서 그 가치가 클 뿐 아니라, 저본(底本)의 서사자(書寫者)가 명기된 점과 현재까지 알려진 국내 유일본이다.
편찬/발간 경위
『독곡집(獨谷集)』은 1442년(세종 24) 왕명에 의해 경연(經筵)에서 편집되고, 1456년(세조 2) 성석린의 외손인 김연지(金連枝)와 조근(趙瑾)에 의해 간행되었다. 권두에 서거정(徐居正)의 서문과 권말에 조근의 발문이 있다.
성석린의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자수(自修)이며, 호는 독곡(獨谷)이다. 1357년(공민왕 6) 과거에 급제한 이후 사관(史官)을 비롯하여, 성균관 사성(司成), 정당문학(政堂文學), 지공거(知貢擧) 등 문한을 역임하였다. 조선의 역성혁명에 참여하여 단성보절찬화공신(端誠保節贊化功臣)의 녹권(錄券)이 내려지고, 창성군(昌成郡) 충의군(忠義君)에 봉해졌다.
태조가 즉위하자, 문하시랑찬성사가 되었고, 1393년(태조 2) 개성부판사, 1398년(태조 7) 문하시랑찬성사·판호조사 등을 역임하였다. 정종이 즉위하자, 서북면도순찰사·도절제사문하시랑찬성사가 되었으며, 익대공신(翊戴功臣)의 녹권이 내려지고, 좌정승이 되었다. 태종이 즉위한 후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고, 1402년(태종 2) 영의정 부사를 거쳐, 이듬해 우의정, 그리고 1407년(태종 7)에 좌의정을 지냈고, 1415년(태종 15) 영의정이 되었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시풍은 이백을 주로 했고, 글씨를 잘 써서 태조의 건원릉 비문을 썼으며, 특히 초서에 능했다고 한다.
그의 시에서는 실천적인 관료의 면모를 형상화한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개인적인 감정과 흥취를 표출하여, 다양하고 개성 있는 시세계를 지닌 정감 있는 시도 많이 지었을 뿐만 아니라 그 시적 풍격(風格)이 혼후(渾厚), 웅장호방(雄壯豪放), 호탕(豪宕), 준일(俊逸)하다는 제가(諸家)들의 평은 독곡의 문학적 재능을 재확인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독곡은 위로는 임금을 보좌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교화하는 관료문인으로서 그의 시에서는 당대의 보편적인 관료문인의 전형적인 문학의식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아직은 성리학적 문학의식이 본격화되기 이전으로 유연하고, 개방적 사유체계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세계를 이루고 있어서 순수시인으로서의 뛰어난 위상을 지닌 당대의 대표적 문인 중 한 사람이라는 점에 그 문학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서지 사항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9행 17자의 무어미(無魚尾)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23.2×16.7㎝이며, 일본 봉좌문고,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독곡 성석린의 문집으로서, 산문(散文)은 없고, 오직 운문(韻文)만 수록되어 있다. 이는 당시에 비슷하게 활동한 권근(權近)의 『양촌집(陽村集)』처럼 운문과 산문을 모두 수록하고, 그 양도 40권의 방대한 분량인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한수(韓脩)의 『유항시집(柳巷詩集)』, 정몽주(鄭夢周)의 『포은시고(圃隱詩藁)』, 김구용(金九容)의 『척약재학음집(惕若齋學吟集)』에서 알 수 있듯이 운문만을 편집하여, 1책 정도의 문집으로 간행하는 것이 조선 초기 문집 간행에 있어 더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권1에 가(歌) 4편, 단가(短歌) 1편, 제시(題詩) 2수, 장시(長詩) 16수, 시 175수, 권2에 시 352수가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불교적인 것을 소재로 택한 것이 많다. 권1의 ‘차융상인시권제공운(次融上人詩卷諸公韻)’·‘차휴상인귀풍악산차기우자운(次休上人歸楓岳山次騎牛子韻)’ 등 17수, 권2의 ‘송승지풍악(送僧之楓岳)’ 등 43수가 모두 불교와 관련 있는 시제들이다.
이와 함께 상당수의 시가 도가적인 시상(詩想)과 의경(意境)에 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맹하만흥(孟夏謾興)’ 2수는 조물(造物)을 ‘아이들의 장난(造物眞兒戱)’으로 비유했고, 인생살이를 ‘나그네 잠시 쉬어가는 곳(勞生一旅亭)’으로 표현해, 속념(俗念)을 떨쳐버리고, 물외(物外)에 선유(仙遊)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 사대부의 유교적 사고 틀에서 벗어나, 노불(老佛)의 사상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은 억불정책이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던 조선 초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그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자연을 소재로 한 시 중에서 ‘풍악(楓岳)’은 금강산의 해 돋는 광경을 읊은 것으로, 웅건하고 진취적인 기상이 담겨 있다. 또한 차운(次韻)·화답류(和答類)가 상당히 많은데, 특히 당시 문명을 떨쳤던 이행(李行)·하륜(河崙)과 주고받은 것이 많아, 이들과 문학적인 교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포훤첨하음성일절기정기우(曝暄詹下吟成一絶寄呈騎牛)’와 ‘차장사예시운(次張司藝詩韻)’ 등 술을 소재로 하는 시가 상당수 되는데, 여기서 저자가 얼마나 술을 좋아한 시인이었는가를 말해준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저자가 여말선초의 전형적인 관료로서뿐만 아니라, 순수시인으로서의 위상을 조명한 것에 그 의의를 지닌다. 성석린의 시는 시정이 풍부하고, 문사(文辭)가 유려하며, 웅건한 기상과 초매(超邁)한 의취(意趣)가 담겨 있어, 성당(盛唐)의 시풍을 연상시킨다.
참고문헌
- 오형정, 「獨谷 成石璘의 詩文學 硏究」, 성신여자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 정교진,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 사상(思想) 연구(硏究)-천경지의(天經地義)의 완인정신(完人精神)을 중심으로-」, 『율곡학 연구』 25권, 율곡연구원, 2012.
- 정해출, 「獨谷 成石璘 漢詩의 硏究」, 고려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6.
- 최윤정, 「獨谷 成石璘의 詩文學 硏究-여말 선초 전환기적 양상을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