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열(桃茢)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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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도열 |
한글표제 | 도열 |
한자표제 | 桃茢 |
분야 | 문화/종교/민간신앙 |
유형 | 물품·도구 |
집필자 | 최진아 |
용도 | 액막이 |
재질 | 나무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도열(桃茢) |
상서롭지 못한 것을 제거하는 액막이 도구.
개설
도열(桃茢)은 복숭아나무 가지와 갈대로 만든 빗자루이다. 『예기』 「단궁편(檀弓篇)」에 의하면, 도열은 맹세 의식이나 장례 때 상서롭지 못한 것을 제거하거나 부정(不淨)한 기운을 제거하기 위한 기능을 지닌 의물(儀物)이었다.
조선시대에 도열은 왕이 신하의 상사(喪事)에 문상(問喪)을 갈 경우 창과 함께 주로 사용되었다. 왕이 신하의 집에 들어서기 전에 왕을 호위하는 군사 4명이 창[戈矛]을 들고 앞장서서 인도하면 무당이 도열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왕이 빈소에 들어가기 전에 무당은 이 도열을 잡고 푸닥거리[祓除]를 행하였다. 의식이 끝나면 상가(喪家)에서 왕이 문상을 할 공간의 동서남북 사방에 도열을 놓았다.
도열을 들고 왕을 상가(喪家)에 인도한 이유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첫 번째는 왕이 상사에 임했을 때 거쳐야만 하는 절차의 하나로 인식했던 예법의 일종이라는 점과, 두 번째는 조선시대에 흉상은 곧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사고를 바탕으로 하여 정화의 기능을 지녔을 것이라는 점이다.
연원 및 변천
조선시대 도열의 도입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조선중기 이후 도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이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중신들의 상소에는 음사인 도열을 행하는 것을 금하거나 혹은 도열을 생략한 채 문상을 가게 한 관리를 벌할 것을 간언하는 내용도 있었다. 도열은 사회적인 인식 변화의 흐름에 의해 일정 기간 생략되었다가 또 다시 상사에 사용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조선중기와 말기 이후에는 도열이 지니는 본래의 기능인 예법에 맞게 사용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도열은 복숭아나무와 갈대가 지니는 벽사(辟邪)의 기능으로 인해 공간을 정화하고 부정을 제거하는 의미도 지닌다.
형태
도열은 복숭아나무 가지와 갈대를 그 재료로 하여 만든 빗자루 형태를 띤다. 이는 빗자루가 지니는 본래의 기능에서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도열은 상사(喪事)가 행해지는 상가(喪家)에 있을지 모를 부정하고 상서롭지 못한 것을 쓸어내어 그 공간을 정결하게 전환시켜 주는 기능을 지녔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민간에서 복숭아나무는 귀신을 물리치는 것으로, 특히 동쪽으로 난 도동지(桃東枝)가 악귀를 쫓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숭아나무의 가지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혹은 도장이나 무구 등을 만들어 귀신을 쫓는 데 사용해 왔다. 무속에서는 잡귀(雜鬼)가 들린 병자를 치료하는 치병의례(治病儀禮)나 귀신이 들려 헛소리를 하는 환자를 위한 축귀의식(逐鬼儀式)을 행할 때 복숭아나무로 만든 칼이나 활로 잡신이나 귀신을 쫓아 왔다. 복숭아나무 칼은 귀신이 있는 방향에 걸어두어 귀신을 위협하고 쫓는 기능을 하며, 활은 살을 막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내림굿을 할 때, 동쪽으로 난 복숭아나무 가지를 꺾어 쇠와 함께 실로 묶어 귀신을 병에 가둘 때 쓴다.
참고문헌
- 『예기(禮記)』
- 『주례(周禮)』
-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 『유서(類書)』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국립문화재연구소·한국민속학회, 『巫具』서울·경기·강원, 민속원, 2003.
- 이능화 지음, 서영대 역주, 『조선무속고: 역사로 본 한국 무속』, 창비, 2008.
- 李能和, 「朝鮮巫俗考」, 『啓明』, 1927.
- 최진아, 「무속의 물질문화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