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신여(都愼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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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05년(선조 38)∼1675년(숙종 1) = 71세.] 조선 중기 인조~숙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성균관 사예(司藝)이다. 자(字)는 명숙(明叔)이고, 호(號)는 휘헌(撝軒)이다. 본관은 성주(星州)이고, 출생지는 경상북도 대구(大邱)의 하빈현(河濱縣) 도촌리(島邨里)이다. 아버지 도성유(都聖兪)이고, 어머니 광주이씨(廣州李氏)는 이심해(李心海)의 딸이다. 생부 도여유(都汝兪)는 무공랑(務功郞)이고, 생모 여주이씨(驪州李氏)는 이우겸(李友謙)의 딸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미락재(彌樂齋) 서사원(徐思遠)의 문인이다.

인조 시대 활동

1633년(인조 11) 사마시(司馬試)의 진사과(進士科)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29세였다.[<사마방목>]

효종 시대 활동

1651년(효종 2) 식년(式年) 문과(文科)의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47세였다.[<문과방목>] 내직으로는 성균관 전적(典籍)⋅사헌부 지평(持平)⋅예조 좌랑(佐郞)⋅예조 정랑(正郞) 등을 거쳤으며, 외직으로는 창락찰방(昌樂察訪)⋅용담현령(龍潭縣令) 등을 역임하였다.

1656년(효종 7) 용담현령으로 재임할 때에는 봉급 일부를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659년(효종 10) 예조 정랑으로서 자의대비(慈懿大妃) 기년복(朞年服)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사직하였으나, 이듬해 다시 예조 정랑에 임명되었을 때, 명경과(明經科)를 공정하게 주관하면서 선비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이때 기년설(朞年說)을 반대한 소를 올렸다가 황간(黃澗)으로 유배되었다.

숙종 시대 활동

1675년(숙종 1) 숙종이 즉위하자 성균관 사예(司藝)에 임명되었다.

저서로는 『휘헌집(撝軒集)』 2권이 있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금옹집(錦翁集)』
  • 『동계집(東溪集)』
  • 『석담집(石潭集)』
  • 『양직집(養直集)』
  • 『옥계집(玉溪集)』
  • 『죽헌집(竹軒集)』
  • 『충재집(冲齋集)』
  • 『휘헌집(撝軒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