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응방(德應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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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내사복시(內司僕寺)에 소속되어 가마[輦]와 안장[鞍]을 관리하던 곳.

개설

덕응은 ‘덩’에서 음을 취해 만든 단어이며 덩은 공주나 옹주가 타는 가마를 말한다. 덕응방이 소속되어 있던 내사복시는 사복시(司僕寺)에 소속된 관아로서 궁중에서 왕의 말과 수레를 관리하던 기관이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이 완성되면서 정3품아문의 관청으로 정비되었다.

덕응방은 그중에서도 가마와 안장을 관리하였으며(『문종실록』 즉위년 9월 19일) 경복궁에서 광화문(光化門)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창경궁에도 홍화문(弘化門) 오른쪽에 있었다.

위치 및 용도

광화문을 들어서면 양쪽에 담장이 있고 동쪽에는 협생문(協生門), 서쪽에는 용성문(用成門)이 있다. 협생문은 1칸짜리 사주문으로 이 문을 지나가면 봉의문(奉宜門), 광청문(廣淸門)을 통하여 동궁과 내전 권역으로 들어가고, 용성문을 통과하면 내사복시를 비롯하여 궐내 각사 등이 있는 권역으로 들어간다.

용성문 안쪽 경복궁의 서남 모서리에 위치한 내사복시의 건물들은 말이 있는 마랑(馬廊)과 수레를 보관하는 연고(輦庫), 말의 먹이를 보관하는 마량고(馬粮庫), 관련 관원과 마부의 처소로 구성되어 있다. 배치 형태는 내사복 본청을 중심으로 그 뒤에 덕응방이 있고 본청의 우측에 연고, 본청 전면에 좌우로 마랑이 있으며 마랑 오른쪽에 왕의 말을 끄는 종7품 잡직 마부의 처소인 견마배청(牽馬陪廳) 4칸이 있다. 덕응방의 우측에는 신당(神堂)이 있다.

변천 및 현황

고종대 이전의 경복궁을 그린 그림에는 사복시의 위치를 표시하지 않았으나 성종대에 경복궁 덕응방에서 세조의 어진을 채색한 것으로 보아(『성종실록』 7년 5월 5일) 조선전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창경궁에는 홍화문의 오른쪽에 해당하는 창경궁 남동쪽 궁장 안에 사복시가 있다. 배치 구성과 각 건물의 구성은 경복궁의 내사복 일곽과 마랑의 칸 수를 제외하고는 거의 일치하고 있어서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창경궁의 내사복시와 마랑 일곽의 구성을 본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창경궁의 내사복은 경복궁과 달리 활을 쏘는 사정(射亭)이 2칸 있는 것인데, 이는 송나라 효종이 원나라를 대항하여 목마(木馬)로 적을 막고 철장(鐵杖)으로 물리쳤다는 고사에 따라 효종조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후에 이 정자를 없앴다가 1742년(영조 18)에 고쳐지었다.

형태

내사복시 영역의 중심 건물은 정면이 5칸이며 측면은 앞·뒤에 툇간이 있는 2칸 규모이고 오른쪽에 누마루, 방 2칸, 대청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덕응방의 모습은 창경궁과 창덕궁의 모습을 그린 「동궐도(東闕圖)」를 통하여 추정할 수 있다. 가마를 보관해야 하므로 전면에는 기둥 사이에 큰 널판문을 달고 뒤쪽은 통풍을 위한 살창을 달았다. 평면 크기는 내사복시 영역에서 가장 큰 정면 8칸에 측면 2칸의 규모이다. 반면 마구간인 마랑은 전면에는 벽체나 창호가 없이 개방되었다.

참고문헌

  • 『궁궐지(宮闕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궐도(東闕圖)」「북궐도형(北闕圖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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