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원부(德源府)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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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덕원부 |
한글표제 | 덕원부 |
한자표제 | 德源府 |
동의어 | 의주(宜州), 의천(宜川), 덕원도호부(德源都護府) |
관련어 | 영장(營將), 토포영(討捕營) |
분야 | 정치/행정/관청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김우철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덕원부(德源府)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종실록』 13년 10월 15일, 『세종실록』 19년 4월 2일, 『세조실록』 11년 5월 18일, 『세조실록』 3년 7월 1일, 『고종실록』 32년 5월 26일, 『고종실록』 33년 8월 4일 |
조선시대 함경도 덕원 지방을 관할하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덕원부(德源府)는 1464년(세조 10) 설치되어 1895년(고종 32) 관제 개혁에 따라 덕원군(德源郡)으로 바뀔 때까지 함경도 덕원 지방을 관할하는 행정구역으로 기능하였다. 장관은 도호부사(都護府使)로서 덕원부의 행정을 총괄하였다. 조선전기 진관(鎭管) 체제 아래에서는 안변진관(安邊鎭管)의 병마동첨절제사(兵馬同僉節制使)를 겸임하였으며, 조선후기의 진영장(鎭營將) 체제에서는 후영장(後營將)과 토포사(討捕使)를 겸하였다. 함경도 남부에서 행정과 군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구려 때는 천정군(泉井郡)이었으며, 얼매(乻買)라고도 했다. 신라 때 정천군(井泉郡)으로 개칭하였다.
고려 때에는 용주(湧州)라 하였고, 995년(고려 성종 14)에 방어사(防禦使)를 두었으며, 뒤에 의주(宜州)로 고쳤다. 1108년(고려 예종 3)에 성을 쌓았다.
조선이 건국한 뒤 1413년(태종 13) 10월 15일, 전국의 군현 가운데 ‘주(州)’ 자를 가진 고을을 모두 ‘산(山)’이나 ‘천(川)’ 자로 바꾸었다. 이때 의주도 의천(宜川)이라 고쳤다(『태종실록』 13년 10월 15일). 1437년(세종 19)에 덕원(德源)으로 고치고 군(郡)으로 만들었다(『세종실록』 19년 4월 2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그 이후 27년 만에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의 어향(御鄕)이라 하여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켰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승격 당시의 기사가 확인되지 않지만, 덕원군으로 이름이 바뀐 지 27년 만인 1464년(세조 10)으로 추정된다. 『세조실록』에 처음으로 덕원부의 명칭이 확인되는 것은 1465년(세조 11) 5월 18일의 기사이고(『세조실록』 11년 5월 18일), 마지막으로 덕원군의 명칭이 확인되는 것은 1457년(세조 3) 7월 1일의 기사이다(『세조실록』 3년 7월 1일).
조직 및 역할
도호부사 즉 부사(府使)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종3품으로 규정되었으며, 임기는 30개월이었다. 『여지도서』에 3품으로 당상관 혹은 당하관으로 임명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정3품도 부사로 임명되는 예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상관의 임기는 30개월, 당하관의 임기는 60개월이었다. 진관 체제 아래에서는 안변진관에 속하여 안변부사(安邊府使) 휘하의 병마동첨절제사를 겸임하였다. 조선후기 진영장 체제에서는 후영장으로서 토포사를 겸하였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부사에 직속된 이속(吏屬)으로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3명, 군관(軍官) 3명, 아전(衙前) 58명, 통인(通引) 22명, 사령(使令) 14명, 군뢰(軍牢) 8명, 관노(官奴) 34명, 관비(官婢) 25명, 교노(校奴) 9명, 교비(校婢) 9명, 원노(院奴) 13명, 원비(院婢) 11명, 약한(藥漢) 2명, 부가솔(府假率) 250명, 토포군관(討捕軍官) 30명, 보민군관(補民軍官) 230명, 군기군관(軍器軍官) 130명, 풍헌(風憲) 5명, 약정(約正) 5명, 권농관(勸農官) 5명, 권농(勸農) 5명, 사주인(社主人) 5명이 있었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덕원의 관할 행정구역으로는 『여지도서』에 5사(社)가 소개되어 있는데, 현사(縣社), 적전사(赤田社), 부내사(府內社), 북면사(北面社), 용성사(龍城社)의 5사가 있었다.
변천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으로 인하여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가 대구역주의인 8도제에서 소구역주의인 23부제로 바뀌면서 함흥부(咸興府) 소속의 덕원군으로 바뀌었다(『고종실록』 32년 5월 26일). 이듬해 다시 전국을 13도 8부 1목 331군으로 개편할 때 덕원군은 다시 함경남도에 소속되었다(『고종실록』 33년 8월 4일). 1910년에 원산부(元山府)가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산부와 덕원군으로 개편되었다. 1942년 덕원군은 분리되어 원산부와 문천군(文川郡)에 각각 병합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손정목, 『한국지방제도·자치사연구(상)』, 일지사, 1992.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