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군(德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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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덕산군(德山郡)은 조선시대 충청도 홍주목에 속한 현이다. 조선 1405년(태종 5)에 고려의 이산현(伊山縣)과 덕풍현(德豐縣)을 합쳐서 설립되었다. 두 현을 합치면서 인구는 649호 3,214명이 되었다. 15세기에 토지는 5,199결이고 비옥한 편이었고, 이 가운데 논이 5/9였다. 군정은 시위군(侍衛軍) 20명, 진군(鎭軍) 230명, 선군(船軍) 87명이었다. 1837년(헌종 13)에 군으로 승격되었고, 1914년에 예산군 덕산면이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이산현은 백제에서는 마시산군(馬尸山郡)이라고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 이산군으로 고쳤다. 덕풍현은 백제의 금물현(今勿縣)이었다. 통일신라에서는 금무(今武)로 개칭하고 이산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1018년(고려 현종 9)에 두 현을 모두 지금의 홍성 지역인 운주(運州)의 속현으로 삼았다. 명종대에 감무를 설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1405년(태종 5)에 두 현을 합쳐 덕산이라고 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현으로 삼았다.

이산현은 고려시대에 군사적 요충지였다. 고려 말에는 최영이 도절제사영을 이산현에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군사기지를 해미로 옮기고 이산현은 해미를 지원하는 현이 되었다. 그 결과 이산현의 부담이 커졌다. 1405년에 이산현과 덕풍현을 합친 이유도 이산현이 해미 내상(內廂)의 근처에 있어 각종 노역과 공물의 부담이 크고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내상은 고려시대 출정군 총사령부의 참모기구로 군령을 전달하고 군사 행정을 담당하였다. 1421년(세종 3)에는 도절제사의 영문을 해미 내상에 설치하고, 내상을 운영하기 위해 덕산현을 성안으로 옮긴 적도 있었다(『세종실록』 3년 1월 22일). 이 사례에서 보듯이 두 현을 합병한 진짜 이유는 충청도의 내정과 군정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군정과 요역 인력, 재정을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규모 있는 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조직 및 역할

종6품 현감과 훈도 1명을 두었다. 훈도는 나중에 폐지하였다. 현감은 문과, 무과, 음서 출신을 골고루 임명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관속은 좌수 1명, 별감 2명, 군관 8명, 아전 40명, 지인 32명, 사령 27명, 관노 16명, 관비 12명이었다. 관아는 81칸이며, 62칸의 객사가 있었다.

변천

18세기에 13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1759년(영조 35)의 기묘장적(己卯帳籍)에 의하면 호수는 편호 5,044호, 인구는 남자 7,808명, 여자 10,560명이었다. 토지는 밭이 1,867결, 논이 2,771결이었다. 1837년(헌종 13)에 군으로 승격하였다. 1914년의 지방제도 개혁 때 예산군에 합쳐져 덕산면이 되었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