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국영사관(德國領事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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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조약 이후 독일 정부가 경성 주재 독일인의 영사 업무만을 전담하기 위하여 설치한 외교관서.

개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 외부(外部)가 폐쇄되면서 외국 주재 한국공관들도 철수하였다. 동시에 대한제국에 주재하였던 외국 공사관들도 폐쇄되었다. 대한제국에 외교권이 없었으므로 일본 외무성이 외교 업무를 대행하였다. 공사관이 폐쇄되고 대신 독일[덕국(德國)]영사관이 독일인의 경제적 이익 보호와 자국민의 영사 업무를 담당하였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과 일본이 전쟁에 돌입한 후 외교 관계가 단절되면서 영사관은 폐쇄되었다. 1920년 영사관 건물은 조선식산은행에 매각되었다. 1928년 재차 덕국영사관이 개설되었으나 곧 폐쇄되었고, 1930년대 이후로는 중국 대련 주재 독일영사관이 사무를 인계받았다.

조직 및 역할

1905년(고종 42) 12월 4일 나이(Ney)가 영사로 부임하였고, 1907년 6월 6일에는 크뤼거[F. Kruger]가 경성 주재 신임 영사로 임명되었다. 영사들은 외교 업무보다는 독일의 경제적 이익과 한국과의 통상 업무만을 진행하였다. 고종과 순종 등 대한제국의 고위층과는 지속적인 왕래가 있었으며, 신년 축하연이나 경축일에는 고종 등을 알현하였다. 대한제국에서도 순종이 영사관 직원들에게 훈장을 수여할 정도로 관계를 유지하였다(『순종실록』 즉위년 12월 28일). 1910년대에도 문안인사를 올리거나 이취임식, 경축일에는 어김없이 덕수궁과 창덕궁을 방문하였다.

변천

1914년 조선에서의 독일 영사 업무는 미국 영사관에 위임하였다. 당시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여 더 이상 외국 주재 영사관들을 운영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은 1905년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상실하자 가장 먼저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으나 한반도 내 영사 업무를 위하여 영사를 두고 있었다. 1928년 경성에 독일영사관이 다시 개설되어 영사 업무를 시행하였다. 그러나 곧 중국 주재 대련영사관에서 사무를 인계받았고 경성의 영사관은 폐쇄되었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新報)』
  • 『주한일본공사관기록(駐韓日本公使館記錄)』
  • 고려대학교 독일문화연구소, 『조선 주재 독일외교문서자료집』, 우삼, 1993.
  • 국사편찬위원회, 『고종시대사』, 1967.
  • 김원모, 『근대한국외교사연표』, 단국대학교 출판부, 1984.
  • 리하르트 분쉬, 『고종의 독일인 의사 분쉬』, 학고재, 1999.
  • 이순우, 『정동과 각국공사관』, 하늘재, 2012.
  • 임경석·김영수·이항준, 『한국근대외교사전』, 성균관대학교, 2012.
  • 김학준, 『서양인들이 관찰한 후기 조선』 서강대학교 출판부, 2010.
  • 나혜심, 「개항기 한국의 독일공관 연구」, 『개항기 재한 외국공관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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