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이 책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이 송나라의 주희(朱熹)가 지은 『대학장구(大學章句)』가 문맥이 잘 통하지 않는 점을 인식하고, 경(經)과 전(傳)에 편장(編章)의 서차(序次)를 바꾸고, 새롭게 해석한 경전주석서다.

개설

원래 『대학(大學)』은 주희의 『대학장구』를 비롯해 경 1장과 전 10장으로 되어 있지만, 이 책에서는 경 1장에 전 9장으로 구성하였고, ‘경’과 ‘전’의 구절 차례를 바꾸어 뜻이 통하도록 함으로써 『대학장구』의 잘못된 점을 보충하였기 때문에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란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 책 뒤에 ‘속대학혹문(續大學或問)’이 실려 있는데, 이것은 ‘대학장구보유’의 뜻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경 1장과 전 10장으로 구성된 주희의 『대학장구』에서 전의 제4장인 ‘본말장(本末章)’을 경문의 결어로 옮겨 전을 하나 줄이고, 제5장 격치장(格致章) 중에서 주희가 망실되었다고 설명한 부분을 경문의 두 구절을 옮겨다가 새로이 설정한 점이다. 또한 『대학장구』의 지선(至善)을 중(中)으로 본 것 등 해석을 달리 한 부분도 있다. 이러한 수정은 격물(格物)에서 ‘사(思)’를, 치지(致知)에서 ‘지어지선(至於至善)’을 강조하는 특징을 지녔다. 이 책은 조선의 성리학 체계를 세워가는 과정에서 주희의 학문을 비판하고, 독자적인 견해를 세웠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조선 중종 때의 유학자이며 정치가인 회재 이언적이 1547년(명종 2)에서 1553년(명종 8) 사이에 직접 쓴 저술 가운데 하나이다. 이언적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2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김안로를 등용하는 것을 반대하다가 귀양을 가기도 했으며, 김안로 일파가 몰락한 뒤 다시 정치에 나섰고, 후에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서, 그의 송덕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1547년 조작된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제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책을 썼으나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세우는데 선구적 인물로,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원이다.

이 책은 회재 이언적이 전체를 직접 썼으며, 책 끝에는 노수신의 발문이 있다. 송나라의 주희가 정한 『대학장구』와는 부분적으로 다른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주자를 신성시하는 당시 유학사상에 매우 이채로운 저술이다.

서지 사항

1책 47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사주단변(四周雙邊)이고, 반엽광곽(半葉匡郭)은 21.2×15.8cm이다. 10행 18자의 유계(有界), 상하화문어미(上下花紋魚尾)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2.2×20.2cm이며, 규장각, 연세대학교 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대학』의 구성은, 주희의 『대학장구』를 비롯해 경 1장과 전 10장으로 되어 있지만, 이 저서는 경 1장에 전 9장으로 구성하였고, ‘경’과 ‘전’의 구절 차례를 바꾸어, 뜻이 통하도록 함으로써 『대학장구』의 잘못된 점을 보충하였다. 그리고 이 책 뒤에 있는 ‘속대학혹문’은 ‘대학장구보유’의 뜻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 책은 『대학장구』의 본말(本末)을 해석한 ‘전(傳)’의 4장을 뽑아다가, ‘경’의 아래에 놓아 경의 결어(結語)로 삼았고, 『대학장구』에서 이미 망일(亡佚)되었다고 한 ‘격물치지장(格物致知章)’을 ‘경’ 가운데서 ‘지지이후(知止而后)’의 하문과 ‘물유본말(物有本末)’의 하문 2절을 뽑아서, ‘전’의 제4장으로 삼았다. 또한 『대학장구』의 ‘전’ 6장을 여기서는 5장으로, 7장은 6장으로, 8장은 7장으로, 9장은 8장으로, 10장은 9장으로 삼고, ‘전’의 10장을 없애버렸다.

『대학장구』의 해석에서는 ‘여(慮)’를 ‘사(思)’로 ‘지선(止善)’을 ‘중(中)’으로 치국(治國)의 근본을 ‘인(仁)’으로 풀이한 것과, 우서(虞書)의 글을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으로 풀이하였다. 이 책의 하반부에 실려 있는 ‘속대학혹문’은 『대학장구보유』에서 『대학장구』와 저자의 해석이 다른 이유를 6개 조항의 문답식으로 하여 간단· 명료하게 밝혀놓았다.

그 6개 조항은 첫째, 정이(程頤)의 뜻에 따라 차서(次序)를 바로 하는 이유, 둘째, 청송(聽訟) 이하의 일절을 정현(鄭玄)은 고본대학(古本大學)에서 ‘지어신(止於信)’ 아래에 두었는데, 정자는 경의 끝에 두었고, 주희는 『대학장구』에서 전 4장에 놓았는데, 이것을 다시 경의 끝에 놓아야 하는 이유(정자의 뜻을 따른 것), 셋째, ‘격물치지장’을 주희는 망일되었다고 했으나, 여기서는 경문 중의 2절을 취해 보충하는 이유를 밝혀 말하기를, “주자가 다시 태어나더라도 이 뜻을 따를 것이다.”라고 하였다. 넷째, ‘여(慮)’를 ‘사(思)’로 풀이하는 이유, 다섯째, 우서의 “극명준덕……여민오변시옹”을 ‘명명덕(明明德)’과 ‘신민’으로, ‘윤집궐중(允執厥中)’을 ‘지지선(止至善)’으로 풀이하는 이유, 여섯째, ‘인(仁)’을 치국평천하의 근본이라고 하는 이유를 차례로 밝히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주희를 맹신한 학자들에게 학문하는 자세와 연구하는 방법을 제시해 무조건 남의 이론에 순종하는 학풍을 바로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학자로서 당시 주희의 잘못을 대담하게 비판하고, 바로잡은 것에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 김진성, 「晦齋 『大學章句補遺』의 思想的 特徵」, 『공자학』 제20호, 한국공자학회, 2011.
  • 이지명, 「晦齊 李彦迪의 「大學章句補遺」에 관한 연구」, 『사회과학논총』 제16호, 청주대학교사회과학연구소, 2005.
  • 임용균, 「晦齋 李彦迪의 『大學章句補遺』 硏究」, 성균관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
  • 조창열, 「주자(朱子), 회재(晦齋)의 『대학』 주석 비교 연구」, 『한문고전연구』 11권, 한국한문고전학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