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大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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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초 오이라트의 수령 중 한 사람.

개설

15세기 초 몽골 오이라트(Oyirad) 부의 수령 중 한 사람으로, 태평(太平)이라고도 하였다. 대평(大平)을 오이라트 토르구드(Torγud) 부의 아무굴랑(Amuγulang)과 같은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 북원 이후 오이라트는 셋으로 나뉘어 할거하였다.

활동 사항

대평은 1408년에 사신을 보내 명나라에 조공하였다. 이때 명나라는 동몽골과 오이라트의 대립을 이용하여 1409년 오이라트의 마하무([馬哈木], Mahamu)·대평·바투볼드([把禿孛羅], Batubolud) 등 3명을 왕(王)으로 삼았는데 대평은 현의왕(賢義王)의 봉호(封號)를 받았다. 오이라트가 강력해지자 명나라 영락제가 1414년에 친정하자 대평은 마하무를 따라 토올강에서 명나라 군대를 맞아 싸웠으나 패하였다.

이후 명나라와 다시 통교를 하고 예전처럼 조공하였다. 영락 1417년 마하무가 죽자 한때 오이라트의 대권을 잡고 1422년 하미([哈密], Hami) 등으로 출병하였으나 1424년에 마하무의 아들 토곤의 습격을 받아 패하여 죽었다. 현의왕은 그의 아들 날열호(捏烈忽)에게 세습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1410년대의 명나라 영락제의 몽골 정벌의 내용을 알려 온 조서에서 대평이 확인되는데, “추격하여 토라하(土剌河)에 이르니, 적수(賊首) 답리파(答里巴)·마합목·대평·파독발라(把禿孛羅)가 그 지혜와 능력을 헤아리지 못하고 지경을 휩쓸고 왔다(『태종실록』 14년 9월 19일).”는 기록이 있었다.

참고문헌

  • 동북아역사재단 편, 『명사 외국전 역주(明史 外國傳 譯註)』, 동북아역사재단, 2012.
  • ШУА-ийн Түүхийн хүрээлэн, Монгол улсын түүх, Адмон, 2003.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편, 『몽골국 역사』, 애드몬, 2003.)
  • А. Очир, Монголын ойрадуудын түүхийн товч, 1992. (А. 오치르, 『몽골의 오이라드인 약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