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기(大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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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시대 1564년(명종 19)에서 1759년(영조 35)까지의 주요사적을 기록한 편년체의 역사책이다.

개설

『대사기(大事記)』는 조선왕조 역대의 기사 중 특정 왕 때의 중요한 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특히 국론의 시비를 공정히 가리기 위해 광범위한 자료를 참고하였다. 편년체 형식이나 기사본말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서문에서 편찬자인 이선시(李善始)는 당론이 일어난 이래로 공정한 시비가 없어진 것을 비판하고, 공·사찬의 자료를 널리 수집하여 피차의 구별 없이 선악을 모두 기록하였다.

당론으로 시비가 복잡한 문제는 양측의 기록물을 공평하게 모아서 싣고 있으며, 야담에 가까운 자료도 인용하였고, 인용문에는 자료의 출처를 밝히고 있다. 조선조에 시비가 엇갈린 사건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자료집의 의미를 가진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조선시대 역대 조정의 기사 중 특정 왕의 중요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편년체의 형식에다 기사본말체의 성격을 가미하였다. 그러나 기록 해당 년 머리에 천문(天文)의 변화를 기록하였으며, 인용문 말미에 자료의 출처를 충실하게 밝혔다. 특히 당론에 의하여 시비가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는 양측의 기록물을 공평하게 채록하였다. 또한 야담에 가까운 자료도 인용하였는데, 예를 들면 지은이가 모호한 『야담(野譚)』이라는 책에서 광해조에 관한 총평을 인용하며 폭넓은 자료선택의 입장을 보였다.

한편 중국 쪽의 것으로 1180년 여조겸(呂祖謙)이 편찬하고, 1786년(정조 10) 교간(校刊)된 27권 8책으로 된 흠정사고전서(欽定四庫全書)의 『대사기(大事記)』가 장서각도서에 있어 주목된다. 이 책은 인용자료에 근거하여, 주(周)나라 경왕 39년(서기전 481)에서 한(漢)나라 무제 정화(征和) 3년(서기전 90)까지의 중요사적을 편수하고, 『통석(通釋)』 3권과 『해제(解題)』 12권을 통하여 편저자의 역사의식을 피력하였다.

서지 사항

31권 31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사본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반곽(半郭)은 25.8×16.6cm이다. 12행 26자의 오사난(烏絲欄), 반엽(半葉), 주쌍행(註雙行), 내향이엽화문러미(內向二葉花紋魚尾)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24.7×22.1cm이며,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조선시대 1564년(명종 19)부터 1759년(영조 35)까지의 주요사적을 기록한 편년체류(編年體類)의 사서(史書)다. 서문에 의하면, 이 책을 편찬한 이선시는 조선시대에 당론이 일어난 이후 공정한 시비가 없어졌음을 병통으로 여기고, 공찬(公纂)·사찬(私纂)의 서적들에서 자료를 폭넓게 수집하여, 피차의 구별 없이 선·악을 모두 기록하였다고 한다. 정확한 편찬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인용서목 중 『국조보감(國朝寶鑑)』에 관한 협주(夾註)에서 추존되기 이전 정조의 묘호(廟號)인 정종(正宗)의 명칭이 보여, 순조 이후부터 1899년(광무 3년)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권두에 최정진(崔廷鎭)의 서문 및 인용서목이 실려 있다. 특히, 인용서목으로 공간류(公刊類) 71종과 제가(諸家)의 소설(小說)·잡기(雜記)·전(傳)·지(誌)·보(譜) 등 사찬류 170종을 언급하여 역사기술의 공적인 태도를 엿보게 한다.

권1의 내용은 1564년(명종 19)∼1572년(선조 5)으로 심의겸(沈義謙)·김효원(金孝元)의 붕당, 조식(曺植)의 죽음 등을, 권2∼4는 1572년∼1592년(선조 25)으로 종계변무사주청사(宗系辨誣事奏請使)황정욱(黃廷彧)의 개종계득청(改宗系得請)과 토정여립(討鄭汝立)의 공신책봉 등을, 권5는 1592년~1594년(선조 27)으로 명나라 군의 원병, 선조의 비망기(備忘記) 등을, 권6~7은 광해조 때 곽재우(郭再祐)의 상소와 비답,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죽음 등을, 권8~9는 1660년(현종 1)∼1661년(현종 2)과 1670년(현종 11)∼1673년(현종 14) 때의 복상(服喪)에 관한 2차의 예송(禮訟)을, 권10∼20은 숙종조 송시열(宋時烈)의 탄핵, 허목(許穆)의 환직·전유(傳諭)·옥사(獄事), 김장생(金長生)의 문묘종사(文廟從祀) 등을, 권21∼26은 경종 때의 건저(建儲)의 소청(疏請)과 연잉군(延礽君)의 세제(世弟) 책봉, 노론 사대신(老論四大臣)의 탄핵, 윤선거(尹宣擧)· 윤증(尹拯)의 관직·시호 환원 등을, 권27∼31은 1725년(영조 1)∼1759년(영조 35)으로 신임(辛壬) 후의 피적자(被謫者) 석방, 유봉휘(柳鳳輝)의 추증과 반대상소, 왕세자의 훙서(薨逝), 경외호구(京外戶口) 조사와 공인사화의 민폐 지적, 객성(客星)의 출현 등을 기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우리나라의 『대사기』는 편자의 역사의식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작업이 생략되었으나, 중요사적을 발췌· 수록하는 부분이 광범위한 자료선택으로 늘어난 셈이어서, 조선조에서 시비가 엇갈렸던 사적을 연구하기 위한 자료집 구실을 할 수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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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16세기 조선 心學의 擡頭와 역사인식의 변화」, 경희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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