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다다량성견(大內多多良盛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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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실정시대 전기의 영주.

개설

다다량(多多良)은 대내씨(大內氏)의 본성으로 대내씨는 백제 성왕의 왕자인 임성태자(琳聖太子)를 시조로 하였다. 실정시대 대내씨는 주방(周防)을 본거로 하는 서일본의 대표적인 영주가 되었다. 대내씨는 조선과의 통교시 ‘대내다다량(大內多多良)’을 명의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조선 문헌에 등장하는 다다량성견 또는 대내다다량성견은 대내성견(大内盛見)을 가리켰다.

대내성견은 홍세(弘世)의 여섯째 아들로 의홍(義弘)의 동생이었다. 아명은 육랑(六郎)이며, 관위는 좌경대부(左京大夫)였다. 법명은 국청사전대선덕웅(國淸寺殿大先德雄)이었다. 1396년 막부의 명령으로 구주의 소이씨를 토벌하기 위하여 형 만홍(滿弘)과 같이 출진하였다. 그러나 만홍이 전사하는 등 전황이 악화되어 1398년 의홍이 출진하여 이를 평정하였다. 그러나 막부와의 관계가 악화된 의홍이 1399년 막부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성견은 이때 본거인 주방(周防)을 지키고 있었는데, 의홍과 동행하였던 동생 홍무(弘茂)가 막부 측에 항복하고 장군 족리의만(足利義滿)의 뜻을 따르는 조건으로 의홍의 뒤를 잇게 되었다. 이때 대내씨의 영지는 기존의 6개국(國)에서 4개국이 삭감되어 주방·장문(長門)으로 대폭 축소되었다. 성견은 이런 결정을 거부하고 형의 유지를 따라 장군 의만에 대한 저항과 대내씨 가독 상속을 위한 항전에 나섰다. 일시 풍후(豊後)의 대우씨(大友氏)에게 의탁한 적도 있었지만 1401년 12월 홍무를 전사시키고 이듬해 본거인 산구(山口)로 귀환하였다. 그 후 홍무의 잔존 세력을 토벌하고 막부가 홍무의 후계자로 내세운 대내도계(大内道階)도 무찔렀다. 이때 구주는 다시 막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상황이 되어 막부에서도 더 이상 성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404년 막부는 성견의 대내씨 가독 상속과 주방·장문 수호직을 인정하고 아울러 축전(筑前)·풍전(豊前)의 수호에도 임명해 구주 경영의 중책을 맡겼다.

이후에는 영국 지배에 힘써 조선에도 자주 사신을 파견하였다. 1406년경 출가하여 법명을 덕웅(德雄)이라고 하였다. 막부와의 화해 후에도 관계가 껄끄러웠던 의만의 생존 시에는 경도에 가지 않다가 1408년 의만이 사망한 뒤에는 종종 경도에 체류하였다. 경도 체류 중에는 장군·관령 등 상류 무가사회에서 후대받았고 오산(五山)의 선승(禪僧)과도 교류가 깊었다.

1429년 장군 족리의교(足利義敎)에 의하여 축전의 대관(代官)에 임명되어 축전의 막부 영지를 관할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축전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소이만정(少貳滿貞)·대우지직(大友持直)과 대립하게 되어 1430년부터는 전쟁 상태에 들어갔다. 성견은 직접 출진하여 이들과 싸웠는데, 1431년 6월 전사하고 말았다.

활동 사항

성견이 조선에 사신을 처음으로 파견한 것은 성견의 지위가 확립된 1404년(태종 4)이었다(『태종실록』 4년 7월 30일). 의홍이 죽은 뒤 대내씨의 분쟁 상황을 반영하듯 1399년 이후 1404년까지는 대내씨로부터는 사신이 파견되지 않았다. ‘성견’이라는 이름은 1404년에만 사용하였고 1407년부터는 법명인 ‘덕웅(德雄)’을 썼다. 성견은 조선에 여러 차례 대장경을 요청하였고 그때마다 조선은 대부분 이를 허락하여 대장경을 하사하였다. 성견은 무용도 뛰어났지만 선승(禪僧)으로서 불교와 문화적 업적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조선과 통교하며 조선으로부터 받은 대장경을 일본에서 간행하고 대내씨의 원찰인 흥륭사(興隆寺)에 대장경 일체를 봉납하기도 하였다.

1418년(세종 즉위)의 사신도 조선에 대장경을 요청하였는데, 조선에서는 그 이전과는 다르게 이를 거부하였다. 이유는 대내씨를 비롯하여 일본의 여러 통교자들에게 대장경을 너무 많이 주어서 수량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세종실록』 즉위년 8월 21일). 한편 1420년(세종 2)에는 조카인 만홍의 아들 만세(滿世)가 성견과는 별도로 조선으로 사신을 파견하였다(『세종실록』 2년 5월 19일).

참고문헌

  • 國史大辭典編集委員會, 『國史大辭典』, 吉川弘文館, 1999.
  • 松岡久人, 『大內氏の硏究』, 清文堂出版, 2011.
  • 須田牧子, 『中世日朝關係と大內氏』, 東京大學出版会, 2011.
  • 藤井 崇, 『室町期大名權力論』, 同成社, 2013.
  • 須田牧子, 「15세기 일본의 조선불구(朝鮮佛具) 수입과 그 의의: 대내씨(大內氏)의 대장경(大藏經) 수입을 중심으로」, 『한일관계사연구』 20, 한일관계사학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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