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자(堂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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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 황제가 만주족 부족신에게 제사 지내는 장소.

개설

당자는 만주족 신묘의 칭호이자 황제가 부족신들에게 제사 지내는 장소였다. 당자에는 전쟁 중에 사망한 선조의 유물을 받들어 보관하였다. 청이 북경을 차지한 이후 중대한 정치·군사 행동이 있으면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군대 파견의 일을 고하였는데 이를 ‘알묘(謁廟)’라고 칭하였다. 건륭 연간에는 ‘알묘’를 ‘알당자(謁堂子)’로 하고 한인들의 참가를 불허하였다. 당자의 주요 건축에는 제신전(祭神殿), 환전(圜殿) 및 상신전(尙神殿)이 있었다. 환전(圜殿) 앞에는 신간석좌가 있어 신간을 세우는 데 사용하였다. 당자의 제천은 청조의 길례(吉禮) 중의 하나였다. 황제는 정월 초하루 5경(새벽 3시에서 5시 사이) 무렵 일찍 당자에 제를 올리곤 하였으며 일식 등의 현상이 있을 때에는 더 신중하게 제를 올렸다(『정조실록』 18년 2월 22일)(『정조실록』 19년 윤2월 22일).

위치 및 용도

중국 북경시 동성구 남하연(南河沿) 남구로(南口路)의 북쪽, 북경반점(北京飯店)의 서쪽에 위치하였다. 1644년 처음 건설되었던 곳은 장안좌문(長安左門) 바깥쪽 옥하교(玉河橋)의 동편, 즉 지금의 대기창대가(台基廠大街) 북구로(北口路) 서쪽 일대였다. 청대 황제가 장대를 세우고 하늘과 신에 제사를 올리는 장소였다. 당자의 제례는 공식적으로는 원단과 같은 국가대전에 속하거나 황제의 친정이 있거나 혹은 출정명령과 개선시에 거행되었다. 이외에도 황실이나 황제가 간제(竿祭)·월제(月祭)·욕불제(浴佛祭) 등을 거행하기도 하였다. 제사 시에는 샤먼이 기도를 올리는데 주문은 초기 만주어를 사용하였다가 건륭 연간부터 한어를 사용하였다. 다만 만주족 신의 이름은 고치지 않았다.

변천 및 현황

1644년(순치 원년) 건설된 당자는 원래 북경 동안문(東安門) 바깥에 위치한 옥하교(玉河橋)의 동쪽에 있었다. 1900년(광서 26) 8국 연합군이 북경에 침입하였을 때 당자도 불타 다음 해에 지금의 자리에 다시 건설되었다. 당자에서 제사 지내는 풍습은 청의 마지막 황제인 부의(博儀)가 퇴위하면서 끝났다. 남하연의 당자는 이미 훼손되었다.

형태

당자의 주변에는 제신전(祭神殿)·환전(圜殿)·상신전(尙神殿)의 건축물이 있었다. 환전의 앞에 신간석좌(神杆石座)가 있었다. 제신전에는 석가모니·관음보살·관제 등이 있었다. 환전에서는 주신(主神)으로 받드는 부족신의 신위가 있었다.

참고문헌

  • 鄭天挺·吳澤·楊志玖 主編, 『中國歷史大辭典』, 上海辭書出版社, 2000.
  • 유지원, 「청대 황실제사의 샤머니즘적 성격-당자와 곤녕궁 제사를 중심으로-」, 『명청사연구』 23, 명청사학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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