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이전(當二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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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9년 9월부터 관에서 발행하기 시작한 상평통보의 2배 가치를 갖는 동전.

개설

당이전은 1678년(숙종 4) 훈련도감을 포함한 일곱 곳의 관청에서 주전을 시작했다. 1678년 조선 정부는 상평통보를 발행하여 국가의 공식 화폐로 삼고 전국적인 유통을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에 발행된 상평통보는 발행 시기에 따라 이름과 형태가 조금씩 다르며, 종류가 3,000여 종에 이른다. 그중에 당이전은 1678년에 발행된 상평통보 초주단자전에 비해 그 1문의 가치와 무게가 2배에 달하는 동전이었다. 곧 2전 5푼의 무게였으며, 그런 이유로 대형전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상평통보 당이전은 이전의 동전이 1전을 무게로 제작된 것에 비해 2배로 가치를 올린 동전이다. 민간에서 실제 2배의 가치로 통용되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지만 당이전의 개수 방식보다는 동전에 대한 불신도가 증가하면서 당이전의 가치도 원래 가치대로 거래되지는 않았다. 특히 서울로 동전이 집중적으로 상납되어 서울을 중심으로 상평통보의 가치가 하락하였고 상평통보 당이전의 가치도 같이 하락하고 있었다(『숙종실록』 6년 2월 3일). 이후 당이전은 동전의 무게가 1전 7푼에서 점차 1전 2푼까지 하락하면서 ‘당이(當二)’는 유통에서 사라지고 ‘당일전(當一錢)’이 등장하였다.

형태

당이전의 기본적인 외형은 상평통보 초주단자전과 같고 중량이 더 나갔던 만큼 지름 크기가 조금 더 크다. 당이전은 상평통보와 같이 둥근 외형에 사격형의 구멍이 동전 중간에 뚫려 있다. 앞면에는 ‘상평통보(常平通寶)’가 사방에 한 글자씩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상단에 주전한 관청의 명칭을 한 글자로 줄인 글자를 새겨 넣었다. 대표적으로 호조(戶曹)에서 주전한 동전은 ‘호(戶)’, 진휼청(賑恤廳)에서 주전한 동전은 ‘진(賑)’을 새겨 넣어 주전한 관청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하단에는 당이전을 의미하는 ‘이(二)’를 표기하였다. 당이전의 크기는 28~33㎜로 보통 당일전보다 컸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동전의 무게가 점차 감소하면서 당이전도 주전을 멈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이전은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당일전과 섞여 유통되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원유한, 『한국화폐사-고대부터 대한제국시대까지』, 한국은행 발권국, 2006.
  • 정수환, 「17세기 동전유통의 정책과 실태」,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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