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현(魯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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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노성현(魯城縣)은 조선시대 충청도 공주목에 속한 현으로 이산현(尼山縣)의 이름을 고친 것이다. 15세기에는 호수가 384호, 인구가 1,591명이었다. 군정은 시위군(侍衛軍) 28명, 수호군(守護軍) 19명, 선군(船軍) 190명이었다. 1895년(고종 32)에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914년에 논산에 편입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노성현은 백제의 열야산현(熱也山縣)이었다. 통일신라시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이산현이라고 고치고 웅주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1018년(신라 현종 9)에 양광도 이산현으로 공주의 임내에 속했다. 조선이 건국한 뒤에 양광도가 경기도와 충청도로 분리되면서 공주목에 소속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감무를 현감으로 고치는 예에 따라 현감이 파견되었다. 1414년(태종 14)에 인근의 석성현과 통합하여 이성현이라고 하였다가, 1416년(태종 16)에 다시 원래대로 현으로 고쳤다.

조직 및 역할

수령은 종6품 현감이다. 조선후기에는 주로 음서 출신을 수령으로 파견하는 지역이 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를 통한 18세기 통계를 보면 관아에 좌수 1명, 별감 2명, 군관 20명, 아전 15명, 지인 10명, 사령 16명, 관노 15명, 관비 10명이 소속되었다.

변천

1646년(인조 24)에 이산현 출신 유탁(柳濯)이 모반한 사건을 계기로 이산, 연산, 은진 3개 현이 폐지되고 1개의 현이 되면서 은산현(恩山縣)이라고 불렸다(『인조실록』 24년 5월 1일). 1656년(효종 7)에 다시 이산현이 되었다가, 1776년(정조 즉위) 5월에 현의 명칭이 왕의 이름과 발음이 같아서 이산을 이성(尼城)으로 고쳤다(『정조실록』 즉위년 5월 22일). 이후에 노성읍(魯城邑)으로 고쳤다가, 1800년(정조 24)에 노성현이라고 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읍면이 11개로 구성되었다. 1759년(영조 35)의 기묘장적(己卯帳籍)을 보면 호총 2,207호, 남자 3,865명, 여자 3,951명이었다. 토지는 밭 587결 84부 9속, 논 1780결 7부 5속이었다. 1895년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국을 23부(府)의 행정 구역으로 나누었는데 이때 공주부 노성군으로 승격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충청남도 노성군이 되었다. 1914년의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논산군에 편입되었다.

참고문헌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