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훈(內訓)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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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내훈 |
한글표제 | 내훈 |
한자표제 | 內訓 |
분야 | 교육서 |
유형 | 한글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성종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소혜왕후 |
간행처 | |
간행년일 | 1475 |
권책수 | 3권 3책 |
사용활자 | 활자본(훈련도감자(訓鍊都監字)) |
표제 | 내훈(內訓) |
소장처 |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규장각, 일본 봉좌문고(蓬左文庫)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내훈(內訓) |
이 책은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어머니인 소혜왕후(昭惠王后)가 1475년(성종 6) 부녀자에 대한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육서다
개설
소혜왕후는 아버지 한확 밑에서 유교적 부덕을 닦고, 언행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왕손 양육에 있어서도, 작은 실수나 허물도 비호하지 않고 훈계했다. 대개 남자는 호연한 마음을 가졌고, 뜻은 오묘한 진리를 찾는 데 두어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으나, 여자는 오로지 방적· 침선이 잘 되었는가만 따지고 덕행을 알지 못하므로 성인의 가르침을 부녀자에게도 가르치려는 의도에서 이를 지었다고 한다. 책머리에 내훈서와 목록, 책끝에 상의 조씨(尙儀曺氏)의 발문이 있으며, 목차는 언행장(言行章)·효친장(孝親章)·혼례장(婚禮章)·부부장(夫婦章)·모의장(母儀章)·돈목장(敦睦章)·염검장(廉儉章)의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찬/발간 경위
소혜왕후는 엄격한 유교 가문에서 부덕(婦德)을 닦고, 성격 또한 매우 엄격하여 언행이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으며, 부모에 대한 효성도 지극하였다고 한다. 일찍 남편을 잃고 외로운 몸이 되었으나, 아들 성종과 월산대군(月山大君) 형제를 훌륭하게 키워냈으며, 불경에도 조예가 깊어, 범(梵)·한(漢)·국(國) 삼자체(三字體)로 된 불서(佛書)를 편찬하기도 했다.
궁중 안의 여성뿐만이 아니라, 일반여성들의 교양적인 훈시에 특별한 의욕을 보였으며, 당시에 부녀자들이 읽을 만한 적당한 교양서가 없음을 안타까워하여, 『내훈(內訓)』도 이러한 뜻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왕후는 연산군이 생모 윤씨(尹氏)가 죽게 된 사실에 참혹한 보복을 자행하자, 이를 만류하였으나 연산군이 머리를 들이받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이때가 1504년(연산군 10)으로 그녀의 나이가 68세였다. 『내훈』은 1475년(성종 6) 소혜왕후 한씨가 『열녀(烈女)』, 『여교(女敎)』, 『명감(明鑑)』, 『소학(小學)』의 네 책에서 궁중 비빈(妃嬪)과 부녀자들의 훈육에 적합한 글을 가려 뽑아 엮은 책이다. 모두 일곱 장으로 엮어져 있는데, 제1권에는 언행, 효친, 혼례의 3장과 제2권에는 부부장 상하가 있고, 제3권에는 모의, 돈목, 염검의 3장으로 되어 있다.
서지 사항
3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활자본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반엽광곽(半葉匡郭)은 22.3×14.9cm이다. 9행 17자의 주쌍행(注雙行), 상하내향삼엽화문어미(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3.1×21cm이며, 1573년(선조 6)의 내사본은 일본 봉좌문고(蓬左文庫)에, 1611년(광해군 3)본은 규장각에, 1736년(영조 12)본인 『어제내훈』은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책머리에 소혜왕후의 내훈서(內訓序)와 목록, 책 끝에는 상의 조씨의 발문이 있다. 권1에는 언행·효친·혼례, 권2에는 부부, 권3에는 모의·돈목·염검 등 전체를 7장으로 나누어서 실었다. 그리고 각 장마다 『여교(女敎)』·『예기(禮記)』, 『공자(孔子)』·『사마온공((司馬溫公)』 등 40여 종의 경전과 제가설(諸家說)을 인용하였고, 문왕(文王)의 어머니 태임(太任) 등 50여 명의 행장을 인용하여 여성 행실의 실제와 경계할 내용을 밝히고 있다.
제1장 언행에서는 부녀자가 말과 행실에서 주의할 점 및 준수사항을 서술하였다. 말은 인간관계를 친밀하게도 하고 멀어지게도 하며, 크게는 한 나라를 망치게 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입을 조심하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행실에 대하여는 음식 먹을 때 남녀가 함께 있을 때, 남의 방에 들어갈 때의 행동 등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특히 현모양처의 교육적 인간상을 그리면서, ‘부덕(婦德)·부언(婦言)·부용(婦容)·부공(婦功)’의 ‘여유사행(女有四行)’이 있음을 밝혔다. 재주와 총명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야 부덕이 있는 것이 아니요, 언변이 좋아서 언사가 유창한 것이 부언이 아니며, 얼굴이 아름답고 예쁜 것을 부용이라 함이 아니요, 솜씨가 남보다 뛰어난 것을 부공이라 함이 아니라, 어질 인(仁) 속에 4행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제2장 효친은 어버이에 대한 올바른 효도방법이 무엇인가를 밝혔다. 친가의 부모뿐 아니라, 시가 부모를 모시는 법, 부모가 살아 있을 때와 죽은 뒤의 효도법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제3장 혼례는 혼인의 예절을 밝힌 부분으로 혼례의 뜻과 혼수감에 대한 기본자세, 혼인 뒤의 마음가짐 등을 설명하였다.
제4장 부부는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를 밝힌 부분으로 부부의 도를 음양의 이치로써 설명하고, 남편에 대한 예의와 마음가짐 등을 정의한 뒤 역사적인 사실을 특별히 많이 인용하여, 아내의 도리를 강조하고 있다.
제5장 모의는 어머니로서의 예의범절을 밝힌 부분이다. 유모의 선택에서부터 자식의 연령에 따른 교육방법, 시어머니로서의 마음가짐과 며느리에 대한 교육 등을 설명하였다.
제6장 돈목은 정애(情愛)와 화목에 대한 것으로서 동서 또는 친척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방법을 밝혔다.
제7장 염검은 청렴과 검소의 정신으로 어떻게 생활하고, 손님을 대접하며, 관직에 있는 남편을 어떻게 보필할 것인가 등을 밝히고 있다.
언어학 측면에서 볼 때 이 책은 목록과 발문을 제외한 모든 한문에 구결을 달고 번역을 하였으며, 간혹 번역문 안에 주석을 넣어서 이해하기 쉽도록 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궁중용어를 비롯한 다양한 어휘 등으로 독특한 국어사의 자료가 되며, 옛날 여성들의 생활규범을 알려주어 오늘날의 여성에게 교훈이 된다는 점에 현대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 김지용, 「<內訓攷>」, 『影印內訓』, 연세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69.
- 김훈식, 「15세기 韓·中 『內訓』의 여성윤리」, 『역사와 경계』 제79집, 경남사학회, 2011.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세종대왕기념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1.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한글문헌 해제』,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3.
- 안병희, 「壬辰亂直前 國語史資料의 二三問題에 대하여」, 『진단학보』 제33집, 진단학회, 1972.
- 안병희, 「中世語의 한글資料에 대한 綜合的인 考察」, 『규장각』 제3집,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1979.
- 이경하, 「소혜왕후 『內訓』의 『小學』수용 양상과 의미」, 『대동문화연구』 제70집,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