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성포(浪城浦)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조선시대 함경남도 안변도호부에 속한 수군만호.

개설

낭성포는 관방시설로 수군만호가 파견되었다. 1422년(세종 4)에 처음 설치된 이래, 낭성포등처수군만호(浪城浦等處水軍萬戶)는 안변부(安邊府)의 낭성포, 용진현(龍津縣)의 조지포(曹至浦), 영평부(永平府)의 임성포(林城浦)를 관할하였다. 이후 1509년(중종 4)에 낭성포가 혁파되었다.

자연 환경

서쪽으로는 백두대간 줄기에 속한 마식령 산줄기가 남북으로, 남동쪽에는 철령 산줄기가 동서로 지나며 동쪽에 삿갓봉, 황룡산(黄龍山) 등의 산지가 있어 남쪽과 서쪽이 높고 바다에 연한 북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철령(685m) 부근에서 발원한 남대천(南大川)이 군의 중앙에서 북쪽으로 흐른다. 하류에 금화강과 유교천 등이 합류하면서 일대에 넓은 안변평야를 이룬다. 경지는 전체 면적의 22.2%이며, 그중 논이 50.1%를 차지한다.

위치 비정

『여지도서』에 의하면 낭성포영(浪城浦營)은 안변 관아의 북쪽 25리(약 9㎞)에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현재의 함경남도 안변군 안도면 낭성리(浪城里)이다.

변천 및 현황

1422년(세종 4) 2월에 함길도관찰사가 안변의 낭성포, 용진의 조지포 등지에 만호를 배치하여 전임시키자고 한 사실을 통해 이때 낭성포에 수군만호가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세종실록』 4년 2월 11일). 『세종실록』「지리지」가 완성된 1454년(단종 2)의 시점에 낭성포는 병선 9척, 군사 330명이 배치되었다[『세종실록』 지리지 함길도].

한편, 낭성포의 임무는 단지 수군에 국한되지 않았다. 낭성포의 선군(船軍)은 두만강 유역 6진의 축성(築城), 갑산과 삼수 등의 방어, 둔전(屯田) 등의 업무를 맡기도 하였다(『문종실록』 1년 2월 7일) (『세조실록』 6년 2월 14일). 그러나 1509년(중종 4)에 낭성포는 도안포(道安浦)와 함께 혁파되며 복설(復設)되지 않았다(『중종실록』 4년 8월 9일). 따라서 『연려실기술』 등 조선후기의 자료에 낭성포를 일관되게 폐영(廢營)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여지도서(輿地圖書)』
  •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한국지명유래집(북한편)』2,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2013.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