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후(南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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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44년(인조 22)∼졸년 미상.] 조선 후기 현종~숙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사간원 정언(正言)⋅사헌부 집의(執義)⋅승지(承旨)이다. 자(字)는 재원(載元)이고, 호(號)는 퇴촌(退村)이다. 본관은 의령(宜寧)이고, 거주지는 경상도 함창(咸昌)이다. 아버지는 남극로(南極老)이고, 어머니 이씨(李氏)는 이영선(李榮先)의 딸이다. 남인(南人)의 대간(臺諫)으로 활동하였다.

현종 시대 활동

1662년(현종 3) 사마시(司馬試) 진사과(進士科)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19세였다.[<사마방목>]

1669년(현종 10) 식년(式年)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26세였다.[<문과방목>]

숙종 시대 활동

1678년(숙종 4) 사헌부 장령(掌令)에 임명되었고, 1679년(숙종 5) 사간원 정언(正言)이 되었다가, 사헌부 집의(執義)가 되었다. 남인(南人)의 대간(臺諫)으로 활동하며, 안여악(安如岳)⋅김준상(金儁相)⋅민취도(閔就道) 등과 함께 서인(西人)의 영수 송시열(宋時烈)을 탄핵하고 법대로 처벌하도록 청하였다.

1680년(숙종 6) 동부승지(同副承旨)로 발탁되었다가,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때 평안도 중화부사(中和府使)로 좌천되었다.

후손

첫째부인 이씨(李氏)는 이숭언(李崇彦)의 딸이고, 둘째부인 권씨(權氏)는 권덕연(權德淵)의 딸이다.[<방목>] 아들 남도익(南圖翼)은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박사(博士)⋅전적(典籍)을 지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남파집(南坡集)』
  • 『목재집(木齋集)』
  • 『병와집(甁窩集)』
  • 『서원등록(書院謄錄)』
  • 『손재집(損齋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우헌집(寓軒集)』
  • 『학당유고(鶴塘遺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