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헌(南周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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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69년(영조 45)∼1821년(순조 21) = 53세.] 조선 후기 정조~순조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형조 참의(參議)⋅춘천부사(春川府使)이다. 자(字)는 문보(文甫)이고, 호(號)는 의재(宜齋)이다. 본관은 의령(宜寧)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목사(牧師)남인구(南麟耉)이고, 어머니 파평윤씨(坡平尹氏)는 윤상후(尹象厚)의 딸이다. 형조 판서남유용(南有容)의 증손자이고, 영의정남공철(南公轍)의 종손자이다.

정조 시대 활동

1798년(정조 22) 사마시(司馬試) 진사과(進士科)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30세였다.[<사마방목>] 그 뒤에 음직(蔭職)으로 세마(洗馬)⋅호조 좌랑(佐郎)을 거쳐, 사헌부 감찰(監察)이 되었고, 외직으로 나가서 함양(咸陽)⋅무주(茂朱)⋅남원(南原)⋅임천(林川) 등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순조 시대 활동

1814년(순조 14)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46세였다.[<문과방목>] 그 뒤에 사간원⋅사헌부⋅홍문관⋅규장각과 세자시강원 등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역임하였다.

1819년(순조 19) 정3품상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고, 형조 참의(參議)에 임명되었고, 동부승지(同副承旨)로 발탁되었다가, 춘천부사(春川府使)로 나갔다.

1821년(순조 21) 병으로 돌아갔는데, 향년이 53세였다.

문집으로 『의재집(宜齋集)』이 남아 있다.

후손

부인 기계유씨(杞溪兪氏)는 유한기(兪漢紀)의 딸이다.[<방목>]

아들 남태순(南太淳)은 진사(進士)로서 봉사(奉事)를 지냈고, 손자 남상순(南相善)은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承旨)를 지냈다.[<족보>]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고종]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관암전서(冠巖全書)』
  • 『금릉집(金陵集)』
  • 『노주집(老洲集)』
  • 『만향재시초(晩香齋詩鈔)』
  • 『무명자집(無名子集)』
  • 『야은집(冶隱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