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선사(南禪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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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조대장경 판본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경도(京都)의 사찰.

개설

경도 남선사는 선종(禪宗)의 임제종 사원으로 1291년에 개창되었다. 처음에는 선림사(禪林寺)로 불리었으나, 남종선을 계승하는 사찰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남선사로 고쳐 불렀다. 이 사찰에서는 고려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의 판본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 일본 사신에 의하여 전래된 것을 남선사에서 소장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서는 조선시대에도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재조대장경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다.

내용 및 특징

1. 사찰의 내력

남선사는 일본 경도 좌경구(左京区)에 있는 사찰로, 1291년 구산(亀山) 법황이 무관보문(無關普門) 선사를 초빙하여 개창한 임제종(臨濟宗) 사원이었다. 구산 법황은 후차아천황(後嵯峨天皇)의 아들로 태어나 제90대 천황이 되었다가 왕위를 물려준 후 이궁(離宮)인 선림사전(禪林寺殿)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그리고 무관보문 선사는 구산 법황의 초청으로 선림사전에 와서 사원을 개창하고, 그 해 12월에 80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선림사 제2세 주지인 규암조원(規菴祖圓)이 법당과 승당 등을 건립하면서 선종 사원으로서 면모를 갖추었고, 1302년경부터 사찰 이름을 남선사로 고쳐 불렀다. 중국 선종의 남종(南宗)과 북종(北宗) 중 남종선이 세력을 떨쳤으므로 남종선을 계승하는 사찰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남선사라는 이름으로 고쳤다고 한다. 이후 남선사는 지명원통(持明院統)과 대각사통(大覺寺統)으로 양분되었다가 지명원통을 계승하여 일산일녕(一山一寧)·약옹덕검(約翁德儉)·청졸정징(淸拙正澄) 등으로 법맥이 이어지며 발전하였다.

2. 초조대장경의 봉안

남선사는 고려 초조대장경 판본을 가장 많이 소장한 사찰이었다. 남선사에서 초조대장경을 소장하게 것은 본래 14세기 후반에 건립된 선창사(禪昌寺)에 보관되어 있던 대장경이 1614년에 덕천가강(德川家康)의 명에 의하여 본산인 남선사로 이관되었기 때문이다. 이 대장경은 14세기에 구주(九州) 박다(博多)의 경안(慶安)이 중국과 고려의 대장경을 수집하여 신호(神戶)의 선창사로 옮긴 것이었다. 선창사는 남선사에 대장경을 이관시킨 대가로 남선사 진승원으로부터 중국에 가서 대장경을 구하였던 월암(月庵) 선사(禪師)의 의발과 구산 법황 불사리탑을 받았다고 한다.

남선사와 관련해서는 1448년(세종 30)에도 일본 사신 문계정우(文溪正祐)가 와서 남선사가 일본 제일의 선찰인데 화재로 법보(法寶)가 모두 불탔으니 대장경을 보내달라고 요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세종실록』 30년 4월 27일).

남선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장경은 고려 초조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은 해인사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즉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을 만들기 전에 고려에서 처음 판각하였던 대장경을 말하였다. 1010년에 요나라가 고려를 침입하자, 고려 조정이 부처의 힘으로 요나라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하여 제작한 대장경이 바로 초조대장경이었다. 초조대장경 판각 사업은 왕실과 귀족의 지원에 힘입어 현종의 재위 기간(1009~1031년) 내내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1029년(현종 20)에 대장경 판각이 1차적으로 끝나고, 그 후 계속 경판이 보충되어 1087년(선종 4) 2월에 초조대장경이 모두 완성되었다. 이때의 초조대장경은 총 6,000여 권으로 개보대장경의 총 5,048권을 능가하였으며, 당시 동아시아 최고의 대장경이었다. 대장경판은 처음에 흥왕사 대장전에 보관하였지만, 거듭되는 북쪽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개경 근처에 보관하기는 불안하였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대장경판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하여 팔공산 부인사에 옮겨 봉안하였다. 하지만 1232년(고종 19)의 몽골 침입으로 경판은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당시 강화도에 있던 고려 조정은 현종대에 부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쳤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대장경을 판각하여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으로 재조대장경을 판각하였다. 이것이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판이다.

초조대장경판은 몽골의 침입으로 모두 소실되었지만, 그 대장경판으로 인출(印出)한 대장경의 일부가 여러 곳에 남아 있다. 그중 교토의 남선사에 가장 많은 대장경이 남아 있는데 총 1,876권의 초조대장경이 소장되었다. 그 밖에도 대마도에 617권이 보관되어 있고, 국내에 약 300권의 초조대장경이 전하고 있다.

남선사에서는 고려판 이외에도 여러 나라 판본을 수집하여 일체경을 이루었는데, 송판 370, 원판 2,305, 고려판 1,748, 일본판 310, 사본 1,089첩으로 모두 5,822첩의 혼합장경을 구성하였다.

참고문헌

  •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中村文峰·児玉淸, 『南禪寺』, 淡交社, 2008.
  • 南權熙, 「日本 南禪寺 所藏의 高麗 初雕大藏經」, 『書誌學硏究』 36, 서지학회, 2007.
  • 남권희, 「남선사 초조대장경의 서지적 분석」, 『한국중세사연구』 28, 한국중세사학회, 2010.
  • 최정환, 「고려시대 초조대장경과 부인사」, 『한국중세사연구』 28, 한국중세사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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