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창지표(騎槍之標)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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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기창지표 |
한글표제 | 기창지표 |
한자표제 | 騎槍之標 |
분야 | 정치/군사·국방/병기 |
유형 | 물품·도구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심승구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기창지표(騎槍之標) |
말을 타고 달리며 창을 사용하여 찌르는 목표물.
개설
조선시대에 말을 타고 달리며 창(槍)으로 찌르는 목표물을 말한다. 이때 ‘표(標)’는 곧 짚 인형[蒭人]을 가리키며,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이다. 기창(騎槍)의 유래는 오래되었지만, 그 목표물을 표라고 부른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이다. 무과의 기창에서는 사람 형상을 한 허수아비를 설치하고 능력을 평가하였다. 기창의 목표물을 사람 형상으로 만든 까닭은 실전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연원 및 변천
기창의 표는 추인(蒭人)을 말한다. 기창의 표를 언제부터 추인으로 썼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에는 무과를 비롯한 도시(都試), 내금위(內禁衛)·별시위(別侍衛)·친군위(親軍衛)·갑사(甲士)·착호갑사(捉虎甲士)·정병여수(正兵旅帥)·대정(隊正) 등의 시취(試取)에도 추인을 사용하였다. 그 내용은 『경국대전』에서 명문화하였다. 기창의 적은 한 번 맞힐 때마다 5분(分)을 주는데, 올바른 자세를 갖추어야 하였다. 말을 출발시킨 다음 두 손으로 창을 잡아 높이 들었다가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다시 곧바로 돌리어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서 첫 번째 허수아비에 이르러 찔렀다. 허수아비는 정면(正面)을 맞힌 것이라야 인정하였다.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서 두 번째 허수아비에 이르러 찌르고,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서 세 번째 허수아비에 이르러 찔렀다. 찌르기가 끝나면, 몸을 돌이켜 왼쪽을 돌아보며 창으로 뒤를 가리키고, 오른쪽으로도 마찬가지로 동작을 취한 다음 창을 끌고 말을 달려 출발한 곳으로 돌아왔다. 허수아비 세 개 사이의 거리는 각각 25보(步)였다.
형태
창은 길이가 15척(尺) 5촌(寸)이고, 기창의 표 3개를 세운다. 기창의 표는 좌우에서 서로 마주 대하게 하되, 표와 표의 거리는 기사(騎射)의 적에 준한다. 기창의 표는 좌우에 각각 세 개씩 설치하고, 적(的)과 적 사이의 거리는 25보이고 세 개의 적이 모두 50보인데, 좌사(左射)하는 자는 왼쪽의 적을 찌르고, 우사(右射)하는 자는 오른쪽의 적을 찔렀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 임선빈·심승구 외, 『조선전기 무과전시의 고증연구』, 충남발전연구원, 1998.
- 심승구, 「조선전기 무과연구」, 국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