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법석(祈雨法席)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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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기우법석 |
한글표제 | 기우법석 |
한자표제 | 祈雨法席 |
상위어 | 소재법석(消災法席) |
동의어 | 기우재(祈雨齋), 용왕도량[龍王道場], 운우도량[雲雨道場] |
관련어 | 금광명경도량[金光明經道場], 금강경도량[金剛經道場], 나한재(羅漢齋), 반야도량[般若道場], 공덕천도량[功德天道場] |
분야 | 문화/종교/불교 |
유형 | 의식·행사 |
집필자 | 이성운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기우법석(祈雨法席)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종실록』 16년 5월 16일, 『태종실록』 16년 6월 4일, 『세종실록』 21년 4월 19일 |
가뭄이 들었을 때 경전과 다라니를 독송하며 비가 오기를 비는 불교 의식.
개설
기우법석(祈雨法席)은 특정 경전에 의거해 단을 차리고 경전과 다라니를 염송하며 불보살이나 용왕이 비를 내려 주기를 기원하는 법회를 말한다. 농경 사회에서 가뭄은 그 자체로 재앙이자 왕의 부덕(不德)에 대한 하늘의 견책이라고 인식된 까닭에 비를 비는 여러 수단이 강구되었다. 고려시대에 설행된 불교식 기우 의식에는 금광명경도량[金光明經道場], 용왕도량[龍王道場] 등과 같이 의식에 활용된 경전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조선시대의 기우 의식에는 ‘기우’라는 목적과 ‘정근(精勤)’이라는 방법이 강조되고 있을 뿐 활용 경전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구체적인 기우 의례 절차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의례 내용이나 절차는 이전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연원 및 변천
불교식 기우 의식은 『대운륜청우경(大雲輪請雨經)』이나 『해룡왕경(海龍王經)』, 『인왕경(仁王經)』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 『대운륜청우경』에 "삼천 대천세계의 주인이자 무변장엄해운위덕윤개용왕(無邊莊嚴海雲威德輪蓋龍王)은 남섬부주에 비가 오지 않아 목이 마른 곳에서 ‘일체 중생에게 안락을 베푸는 다라니’를 외우면 즉시 비를 내려 한량없는 고통이 있더라도 다 없애 준다."고 하였다.
불교식 기우 의식은 삼국시대부터 설행되었다. 600년에 백제 법왕은 칠악사에서 기우 의식을 행하였고, 753년에는 신라 경덕왕이 유가(瑜伽)의 대덕인 태현(太賢)을 내전으로 청해 『금광명경』을 강설하며 비를 빌게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기우 의식이 다양하게 치러졌는데, 금광명경도량, 금강경도량, 용왕도량, 운우도량, 나한재, 설선기우·경행기우, 반야도량, 공덕천도량 등이 수시로 시행되었다. 1346년에는 충목왕이 친히 내전에서 기우도량을 베풀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유교 의례가 강화되면서, 불교식 소재도량과 법석은 그 시행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태조대에는 천변지괴를 물리치기 위한 소재법석은 다양하게 설행되었으나, 가뭄을 해소하기 위한 불사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태종은 승려들을 불신하였고, 그들을 무(巫)와 같은 종교 전문가로만 인식하였다. 그럼에도 불교식 기우 의식은 전대(前代)와 마찬가지로 설행하였다. 1416년(태종 16) 5월에는 흥복사에서 지계승(持戒僧) 100명을 모아 『대운륜청우경』을 3일 동안 지송하게 하였다(『태종실록』 16년 5월 16일). 또 같은 해 6월에는 흥천사 사리전에서 몸 하나에 머리가 아홉인[一身九頭] 초룡(草龍) 10개를 만들고, 승려 100명을 모아 비 오기를 빌게 하였다(『태종실록』 16년 6월 4일).
세종대에는 기우법석이 성행하였는데, 그에 따라 유학자 관료들의 비판도 거셌다. 집현전 부제학최만리 등은 상소를 올려, 왕도(王都)에서 승려들로 하여금 종을 치고 북을 두드리며 떼를 지어 모여서 재물을 허비하게 하는 것은 하늘의 경계하는 뜻에 답하는 도리가 아니라며 기우 불사를 그만둘 것을 청하였다(『세종실록』 21년 4월 19일). 이후 성종대가 지나면서 대부분의 불교식 국가 의례가 폐지됨에 따라 국행 기우법석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절차 및 내용
기우법석을 설행하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노지(露地)에 단을 차리고, 작단법에 따라 단을 꾸민다. 깨끗한 땅에 청색 장막을 치고 청색 번(幡)을 건 뒤, 단 중앙에 칠보 물이 있는 연못을 그린다. 연못 중앙에는 용왕의 궁궐을 그리고 그 용궁 안에 석가모니가 경전을 강설하는 모습을 그리는데, 부처의 오른쪽에는 관자재보살, 왼쪽에는 금강수보살을 그려 넣는다. 부처의 앞 오른쪽에는 삼천 대천세계의 비를 주관하는 윤개용왕을, 그 맞은편에는 난타와 발난타용왕을 그린다. 단의 사방에는 우분의 즙을 사용해, 네 용왕과 권속이 단을 둘러싸는 것처럼 그린다. 용왕과 권속들은 구름이 잔뜩 낀 청색과 흑색의 구름 속에 있는데, 뱀의 형상을 한 하반신은 그 꼬리가 보배 연못 속에 들어간 것처럼, 보살의 형상을 한 상반신은 합장하고 땅에서 솟아 나오는 것처럼 그린다. 단의 네 모서리에는 푸른 병을 두고 형편껏 음식과 과자를 장만해 진설하는데, 청색으로 염색하여 은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공양한다. 도량의 모든 것은 청색으로 꾸민다.
기우 의식을 행하는 사람은 계율을 지닌 출가 비구여야 하며, 속가 신도의 경우에는 팔관재계를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작법을 할 때는 3일 동안 소식(素食)을 하며, 매일 향탕수로 목욕하고 푸른색의 깨끗한 새 옷을 입는다. 또 의식을 행할 때는 먼저 몸과 말과 뜻이 부처와 합해져야 한다. 이어 책상 위에 『대운경』을 놓고 모든 유정(有情)들에 대해 자비심을 일으키며 지성으로 일체 불보살의 가피를 청한다.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 『대운경』을 읽는데, 2~3명 또는 7명이 교대로 독송하되 끊어지지 않게 한다. 가뭄이 들었을 때 『대운경』을 법식대로 독송하면 1~2일 혹은 7일이 지나면 반드시 감로의 비가 내리는데, 만일 재앙이 중해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에는 다시 의식을 행하면 비가 내린다고 한다.
참고문헌
- 『대운륜청우경(大雲輪請雨經)』,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19.
- 『대운륜기우단법(大雲輪祈雨壇法)』,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19.
- 서윤길, 『한국밀교사상사』, 운주사, 2006.
- 김용조, 「조선전기의 국행기양불사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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