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종묘의(祈告宗廟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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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에서 기도(祈禱)하고 고유(告由)하는 의례.

개설

기고는 국가에서 행하는 제사로 기도와 고유하는 의례를 말한다. 기도는 홍수나 가뭄, 질병, 병충해, 전쟁, 천재지변 등이 발생하거나 오랫동안 비가 올 때 행하였다. 고유는 어가(御駕)의 거둥과 정지, 왕으로 책봉 받는 등의 봉책(封冊), 왕실 구성원의 관례(冠禮)나 혼례(婚禮) 등 국가에 큰 일이 있으면 거행하였다. 기고는 종묘와 사직 등에서 제사를 시행하였다. 특히 기도는 기원하는 바가 절박하면 날을 점치지 않고 시행하였다. 1553년(명종 8) 왕이 기고제(祈告祭)를 직접 주관할 때에는 음복수조(飮福受胙)는 하지 않고, 예문에 따라 폐백으로 소뢰(小牢)를 쓰고 삼헌(三獻)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국가 제례에서 희생을 쓸 때 가장 규모가 큰 대사(大祀) 때는 보통 소, 돼지, 양을 희생으로 쓰는 태뢰(太牢)를 쓰는데, 소뢰는 그 중에 돼지와 양 두 가지만을 쓰는 경우를 일컫는다. 또한 삼헌은 제례 때 헌관이 세 번에 걸쳐 잔을 올리는 의식을 말한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는 기고 의례는 고려시대의 국가 전례를 담고 있는 『고려사(高麗史)』의 삭망천신기도급주고의(朔望薦新祈禱及奏告儀)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조선시대로 접어들어서는 문종대에 편찬이 완료된 『세종실록』「오례」에 기고종묘의(祈告宗廟儀)가 처음으로 재록되었다. 이후 성종대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정조대 『국조오례통편(國朝五禮通編)』과 『춘관통고(春官通考)』, 대한제국 시기의 『대한예전(大韓禮典)』 등 역대 전례서에 이 의주가 수록되어 있다. 그 중 『국조오례통편』에는 기고종묘친향의(祈告宗廟親享儀), 왕세자기고종묘섭행의(王世子祈告宗廟攝行儀)라고 하여 왕이 직접 주관하는 친향과 왕세자가 대신 행하는 섭행을 위한 의주를 각각 마련한 것이 특징적이다. 『춘관통고』에는 친향기고종묘의(親享祈告宗廟儀)만 싣고 있는데, 이는 사시급랍향종묘의(四時及臘享宗廟儀)와 의식 절차가 동일하였다.

절차 및 내용

의식은 기일(祈日) 전 사관(祀官)이 3일 간의 재계(齋戒)를 시작으로, 기일 하루 전 진설(陳設), 기일 당일의 전폐(奠幣), 작헌(酌獻), 철변두(徹籩豆), 망예(望瘞)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재계는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제사 전에 행동과 마음을 정제하고 삼가서 정결한 상태로 제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의식이다. 진설은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자리, 제기 등을 제자리에 놓는 절차이다. 전폐는 국왕과 왕후의 신위에게 폐백을 올리는 예이고, 작헌은 술동이에 있는 술을 술잔에 따라 국왕과 왕후의 신위 앞에 올리는 예이다. 철변두는 제사가 끝나고 제사 음식이 담긴 제기인 변(籩)과 두(豆)를 거두는 절차이다. 헌작하는 절차가 다 끝나면 변과 두를 거두어야 하는데 실제는 변·두의 한 개씩을 조금 옮겨 놓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망예는 축판과 폐백을 묻는 것을 제사 참여자들이 바라보는 의례이다.

이러한 의식의 큰 틀은 『세종실록』「오례」부터 『대한예전』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 없이 지속되었다. 다만, 『세종실록』「오례」의 기고종묘의에 비해 『국조오례의』의 기고종묘의에는 제사 담당자의 변화가 있었는데 종묘령(宗廟令) 대신 묘사(廟司)가 담당하였다. 또 『세종실록』「오례」 기고종묘의에는 다른 국가 전례서에 없는 제기와 제사 음식을 담은 찬구(饌具)의 진설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춘관통고(春官通考)』
  • 『국조오례통편(國朝五禮通編)』
  • 『대한예전(大韓禮典)』
  • 김문식·한형주·이현진·심재우·이민주,『조선의 국가제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 한국역사연구회 중세2분과 법전연구반, 『수교집록 : 조선중기 새 법령 모음』, 청년사, 2001.
  • 임용한, 「조선 초기 의례상정소의 운영과 기능」, 『실학사상연구』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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