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보승회(金剛山保勝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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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금강산을 보존하고 선전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

개설

금강산보승회는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세계적 명승지인 금강산의 절경을 보존하고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금강산보승회가 처음 계획한 사업은 자금 문제로 잘 진행되지 못했지만, 금강산을 국내외에 선전하는 데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1930년에 들어서는 조선총독부가 국립공원 조성을 위한 금강산보승회를 조직하여, 풍광은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교통, 숙박 시설의 개선을 위한 장기 계획을 수립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금강산은 일찍부터 빼어난 절경으로 이름나 있었지만, 교통이 불편하여 일반 관광객이 즐겁게 유람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1916년(대정 5) 8월에 당시 각계의 명사들이 중심이 되어 금강산보승회(金剛山保勝會)를 조직하였다. 이때의 금강산보승회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를 개최했을 때 강원도에서 설립한 협찬회(協贊會)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금강산보승회에서는 우선 기부금 100,000원을 모금하여 도로를 개수하고 여행자 숙소와 휴게소, 안내 표지판 등을 설치해 산을 찾는 관광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했다. 당시 정무총감(政務總監)을 총재에 추대하고 회장(會長), 고문(顧問), 이사(理事) 등을 두며 뜻을 같이하는 동지 회원을 모집했다. 그러나 회 내부 사정으로 기부금 모금이 어려움을 겪으며 계획한 사업이 중지되었고, 보승회의 활동도 침체되었다.

1924년 금강산이 국립공원으로 조성될 필요가 있고, 세계적인 대공원이 될 수 있다는 여론이 일어나자, 그 해 12월 강원도 내무부(內務部)는 금강산보승회를 부흥시키고자 발전 계획을 강구하였다.

그 후 금강산보승회는 금강산의 절경을 널리 알리는 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금강산의 선전을 위해 전국 각지를 순회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 현지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1924년 4월 당시 총무(總務)장한동, 이사(理事)김명원, 고성군수(高城郡守)장헌근 등이 1개월 동안 일본 주요 도시를 순회하면서 강연과 영상물을 통해서 금강산을 선전한 것이다. 그들이 순회한 일본 도시는 도쿄, 요코하마, 요코스카, 센다이, 시즈오카, 나고야, 교토, 오사카, 고베, 오카야마, 다카마츠, 나고야 등이다.

한편 1917년에 순종은 금강산보승회에 돈 1,000원을 하사하였다(『순종실록부록』 10년 5월 26일). 순종이 함흥본궁을 방문하기 위해 금강산에서 함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이용했는데, 당시 순종이 이용했던 도로 등 제반 설비를 수선한 금강산보승회의 공고를 치하하기 위해 수고비를 하사한 것이었다.

변천

1930년 2월 조선총독부는 금강산의 절경을 보존하고 세상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금강산보승회를 조직해 국립공원 조성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총독부의 산림부(山林部)를 중심으로 철도국, 학무국, 내무국에서 위원을 선정하고 조사를 위한 예산을 책정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먼저, 국립공원 조성을 위한 사업비로 도로 정비에 300만원, 관련 시설에 최소 200만원, 총 500만원을 투자하는 10년 사업을 구상했다. 사업의 주안점은 금강산 본래의 자연은 그대로 살리면서 교통을 편리하게 하고 숙박 시설을 정비하며, 사찰을 보존하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 산림부에서는 수목을 정리, 보호하고 풍치를 보존하며 금강산 특유의 고산식물을 보호하도록 했다. 내무국에서는 내외금강의 연락도를 신풍리(新豊里)로부터 한하계(寒霞溪)를 경유하여 온정리(溫井里)에 이르게 만들도록 하였다. 그리고 학무국에서는 사찰이 빈궁하여 수목을 남벌하는 상황에서 승려들에게 약간의 생계비를 보조하여 자연을 손상치 못하게 하며 사찰을 유지하도록 했다. 또 철도국에서는 숙박 설비를 확장하고 철도 교통을 편리하게 하는 업무를 담당하기로 했다. 이후에도 회의를 거듭해 확정된 안을 만들고, 일본의 저명한 학자를 초빙하여 의견을 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같은 총독부의 계획안이 예정대로 모두 진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금강산보승회의 조직을 계기로 금강산의 교통, 숙박 시설 등이 크게 개선되어 금강산을 찾은 관광객이 상당한 도움을 받았음은 분명하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 1930. 2. 12, 「世界의絕勝 金剛山公園」.
  • 『매일신보』, 1924, 192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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