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념요록(勸念要錄)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권념요록 |
한글표제 | 권념요록 |
한자표제 | 勸念要錄 |
분야 | 종교/불교/국어학 |
유형 | 문헌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인조(仁祖)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보우(普雨) |
간행처 | |
간행년일 | 1637년(인조 15) |
권책수 | 1권 1책 |
표제 | 권념록(勸念錄) |
소장처 | 화엄사, 서울대학교 도서관 일사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권념요록(勸念要錄) |
1637년(인조 15)에 승려 보우(普雨)가 극락왕생을 위한 염불을 권장하기 위하여 지은 책.
개설
『권념요록(勸念要錄)』은 1637년(인조 15)에 승려 보우가 극락왕생을 위한 염불을 권장하기 위하여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펴낸 책이다. ‘왕랑반혼전(王郞返魂傳)’ 등 불교 설화 11개의 이야기들을 모아 언해하였다. 매장 9행, 매행 16~19자, 상ㆍ하 삼엽 화문어미로 이루어져 있으며, 판심 서명은 『권념록(勸念錄)』이다.
서지 사항
1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엄사와 서울대학교 도서관 일사문고 등에 소장되어 있는데, 화엄사에는 판목 그대로 전해지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도서관의 일사문고에는 후쇄본(後刷本)이 전한다. 화엄사의 판목에는 일부 마멸되었지만 서문이 전해지는 반면, 일사문고본은 보우의 서문이 빠져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의 저자 보우는 한국불교사에 있어서 최대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는 조선 중기 인물이다. 그는 혹독한 숭유배불(崇儒排佛)의 정치적인 상황 속에서도 불법을 중흥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불교의 장래를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보우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불심에 힘입어 폐지된 도승제도(度僧制度)를 부활시켰다. 또 승과제도를 복원하여 조선 불교의 정법 안장을 계승할 인재를 발탁하며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그는 정토신앙과 불법의 전파를 위해 이야기체의 영험담이나 왕생담을 중심으로 『권념요록』을 편찬하였다. 처음에는 한문으로 편찬하였으나, 언문(諺文)을 즐겨 읽었던 문정왕후를 위하여 한글로 번역한 것을 언해본(諺解本)으로 간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의 권두에는 염불하여 극락에 왕생할 것을 권하는 서문이 있다. 이어 극락왕생의 영험담 11편을 수록하였으며, 끝에 관법(觀法)을 서술하였다. 이 11편의 설화는 「왕랑반혼전(王郎返魂傳)」·「원공결사전(遠公結社傳)」·「궐공칙현보전(闕公則現報傳)」·「오장왕견불전(烏長王見佛傳)」·「정목경집반전(鄭牧卿執幡傳)」·「방저권타왕생전(房翥勸他往生傳)」·「수문황후전(隋文皇后傳)」·「형왕부인입화전(荊王夫人立化傳)」·「양씨자명전(梁氏自明傳)」·「동녀권모전(童女勸母傳)」·「도우선화십념전(屠牛善和十念傳)」 등이다.
이 가운데 「왕랑반혼전」만 우리나라의 것이고, 나머지는 중국의 영험담이다. 왕랑의 이름은 사궤(思机)이며, 함경도 길주 사람이다. 57세 때 11년 전에 죽은 아내 송씨가 나타나서, 염라국에 간 지 11년이 되었지만 아직 선악에 대한 판결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며, 사궤가 다음 날 명이 다하여 염라국의 사신에게 잡혀 갈 것이라는 점을 알려줬다. 그러면서 아미타불의 영정을 구해 모시고, 염불할 것을 권하였다. 사궤가 죽은 뒤 염라대왕에게 이러한 사실을 고하자, 염라대왕은 그와 부인을 인간 세상으로 돌려보냈다. 사궤는 자신의 몸으로 회생하였고, 그 부인은 21살의 나이로 죽은 월지국(月氏國) 옹주의 몸에 의탁하여 재생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책 끝의 「관법」에서는 「십육관경수지법문략」과 「칭찬미타경소(稱讚彌陀經疏)」 등을 인용하여 염불수행법을 간략히 소개하였다.
나머지 10편은 모두 왕자성(王子成)의 『예념미타도장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 권4 「왕생전록(往生傳錄)」에서 소개하고 있는 34편의 왕생담에서 선별한 것으로, 문정황후의 치정과 불교 발전에 참고가 될 만한 것을 중점적으로 뽑아서 모았다. 그리고 관법수행과 칭명염불 및 경전상의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 불교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국어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時)’에서와 같이 어두 자음군의 표기로 ‘ㅲ’이 보이며, 종성 표기 ‘ㄷ’과 ‘ㅅ’이 병존한다. ‘어진’, ‘져부쳐을’, ‘기친(遺)’, ‘허치아니고(許)’, ‘앏치대(如前)’, ‘지나거나’ 등과 같이 ‘ㄷ’ 구개음화도 나타난다. ‘조로왼들’, ‘기드려사’, ‘처섬’, ‘손소’, ‘이’, ‘호오사(獨)’, ‘쇼두서머리’ 등과 같이 ‘ㅿ’이 ‘ㅅ’으로 표기된 예들이 있다. ‘ㆍ’는 비어두 음절에서 ‘ㅡ’로 바뀐 예들도 자주 보인다. 속격은 모두 ‘-의’를 쓰고 있으며, 특이한 종결 어미로 ‘-뇌다’, ‘-쇠다’, ‘-데다’, ‘-뢰다’, ‘-니다’ 등이 나타난다. 의문형 어미 ‘-냐(‘-ㄴ야’로 표기됨)’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박종국, 『한국어 발달사』, 세종학연구원, 1996.
- 이기문, 「십육세기 국어의 연구」, 『문리논집』4 , 서울대, 1959.
- 전광현, 「권념요록에 대하여」, 『낙산어문』 2, 서울대, 1970.
- 최현배, 『고친 한글갈』, 정음사, 1961.
- 황패강, 「나암보우와 『왕랑반혼전』―화엄사본 권념요록을 중심으로」, 『국어국문학』42·43 합병호 , 국어국문학회, 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