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시산(國朝詩刪)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국조시산 |
한글표제 | 국조시산 |
한자표제 | 國朝詩刪 |
분야 | 문학 |
유형 | 한문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선조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허균 |
간행년일 | 1695 |
권책수 | 9권 4책 |
소장처 | 규장각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국조시산(國朝詩刪) |
조선 중기에 허균(許筠, 1569~1618)이 엮은 시선집(詩選集).
개설
『국조시산』은 조선 중기에 허균(許筠, 1569~1618)이 엮은 것으로, 『동문선』 이후, 우리나라 한시가 크게 떨친 조선 중기의 시선집이다. 이 책은 정도전에서부터 권필에 이르는 35가(家)의 각체시 877수를 수록하고, 편말에 『허문세고(許門世藁)』를 싣고 있다. 이 시선집은 오랫동안 발간되지 못하다가, 숙종 때에 이르러 박태순(朴泰淳)에 의해 다시 편집, 간행되었다.
이 시선집은 작품 시구마다 편자의 비(批)와 평(評)을 붙이고 있는데, 우리나라 비평사에서 실제비평의 선구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책은 후대의 시인 묵객들에게 널리 읽혀졌고, 특히 각종 시화와 비평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 중의 하나가 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1695년(숙종 21)에 쓴 박태순의 서문에는 숙종 21년의 간기(刊記)가 있으나, 홍만종(洪萬宗)의 『시화총림증정(詩話叢林證正)』에 있는 “박태순이 광주부윤으로 있을 때 허균이 편찬한 『국조시산』을 간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그가 광주부윤으로 재직한 1697년(숙종 23)이 간행 연대로 추측된다. 이 시선집은 허균이 역적으로 몰려 죽자, 그의 저술들과 함께 거의 인멸될 지경에 놓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책으로 만들어지지 못했다. 이 책의 원고는 사위 이사성의 집으로 보내져 가까스로 화를 면하다가, 광주부윤박태순(朴泰淳)에 의해 간행되었다. 박태순의 서문에는 1695년(숙종 21)이라 하였는데, 박태순이 광주부윤으로 재직한 때가 1697년(숙종 23)이므로, 이 때 간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태순은 “사람은 폐할지언정, 그가 모은 책은 폐할 수 없음을 절감하고, 또 우리나라 시선집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 선집을 후세에 전하지 않을 수 없어, 널리 여러 판본을 구하여, 고증하고 바로잡아 여러 권으로 찬집 간행한다.”라고 서문에서 밝혔다. 박태순은 이로 인해 전라도관찰사를 지낼 때, 전라도 유생의 규탄을 받아 경기도 장단부사로 좌천되었다.
서지 사항
9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가로 26.6cm, 세로 17.9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에는 오언절구 49수(34인), 권2에는 칠언절구 147수(53인), 권3에는 칠언절구 69수(60인), 권4에는 오언율시 153수(58인), 권5와 6에는 칠언율시 116수(41인), 권7에는 오언고시 56수(29인), 권8에는 칠언고시 35수(22인), 권9에는 잡체시 42수(6인) 등이 실려 있다.
허균은 정도전(鄭道傳)에서 권필(權韠)에 이르기까지 35가(家) 각체 시 877수를 수록하였다. 특히 책머리에 ‘허문세고(許門世稿)’라 하여 양천 허씨 일문에서 허한, 허침, 허엽, 허성, 허봉 등 5인과 규수 1인 허난설헌 등 모두 6인의 시를 수록하였는데, 공정성을 위해 시우인 권필로 하여금 가려서 뽑게 했다. 조선 중기의 시선집으로 편자가 직접 각 시에 비평을 붙이고 있어, 우리나라 비평사상 선구적 업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허균의 수준 높은 감식안으로 다른 시선집들이 갖고 있는 약점을 보완하고 있다. 김만중(金萬重)도 비평가로 성현(成俔)과 신흠(申欽), 허균을 꼽을 정도로 이 책의 가치는 높다고 하겠다.
『국조시산』은 작자 또는 시작과 유관한 제영(題詠)이나, 고실(故實)을 역대의 시화만록(詩話漫錄)에서 찾아 보주(補註)를 붙이고 있다. 이것은 고본(稿本)을 재편집하는 과정에서 박태순 자신이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근거는 허균과 동시대인의 저술인 양경우(梁慶愚)의 『제호시화(霽湖詩話)』,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 차천로(車天輅)의 『오산설림(五山說林)』 등이 보주 가운데에 보이기 때문이다. 편자인 허균이 동시대인의 저술까지 두루 섭렵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책 끝에 붙은 「허문세고」는 시우 권필에게 양천 허씨(陽川許氏) 일문 중에서도 허침(許琛)을 비롯하여, 허균의 아버지 엽(曄)과 형 봉(篈), 누이 난설헌(蘭雪軒) 등 6인의 시를 시체(詩體)에 따라 품평 선발하게 하여 편차 수록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현재 수종의 이본(異本: 등사본 5권 1책, 인본 2권 1책 등)이 유전(流傳)하고 있으나, 이들은 선집 중의 고시와 잡체시를 싣지 않았거나, 편말의 「허문세고」가 빠져 있는 것들이다. 『국조시산』 이전의 시선집으로는 『청구풍아(靑丘風雅)』와 『동문선(東文選)』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조선 초기의 것이며, 뒤에 다시 이들이 각각 속편이 나오기까지 하였다. 『속청구풍아』는 그 소장처를 알 수 없다. 『속동문선』은 『동문선』이 간행된 지 불과 40년 뒤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한시가 크게 떨친 조선 중기의 시선집으로서 자료사적 의미는 특기할 만하다.
또한 『국조시산』에 실현된 실제비평의 성과는 우리나라 비평사상 매우 소중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은 후대의 시인묵객들에게 널리 읽혔으며, 특히 시화와 비평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여 주는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있다.
김득신(金得臣)은 그의 『종남총지(終南叢志)』에서 『국조시산』 속에 선입(選入)된 정호음(鄭湖陰)의 「후대야좌시(後坮夜坐詩)」 한 연에 대한 허균의 비평을 통하여, 그의 수준 높은 감식안을 재확인하고 있다. 홍만종은 그의 『시화총림증정』에서 “여타의 선집들은 모두 그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오직 『국조시산』만은 이식(李植)을 비롯한 제공들이 모두 잘 뽑았다고 한다. 이 시산이 널리 세상에서 읽혀진 까닭도 이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김만중(金萬重)도 우리나라에서 비평가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성현(成俔)과 신흠(申欽), 그리고 허균 뿐이라 하였다.
참고문헌
- 민병수, 『국조시산해제(國朝詩刪解題)』, 민음사, 1980.
- 박철상, 「허균 수정고본(手定稿本) 『국조시산』의 출현과 그 가치」, 『한국문화연구』 제12호,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2007
- 임미정, 「『국조시산』 연구」,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 임미정, 「『국조시산』의 두 계열에 대하여」, 남명학연구 제44집,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14.
- 윤호진, 「신선시(神仙詩) 비평의 두 층위」, 『한문학보』 32권, 우리한문학회, 2015.
- 허경진, 『허균의 시화』, 민음사,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