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후익(具後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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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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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구후익 |
한글표제 | 구후익 |
한자표제 | 具後翼 |
분야 | 인물 |
유형 | 무신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숙종~영조 |
집필자 | 이현숙 |
자 | 익보(翼甫) |
출신 | 양반 |
성별 | 남자 |
출생 | 1659년(효종 10) |
본관 | 능성(綾城) |
주거지 | 서울[京] |
부 | 구훤(具翧); 함경남도 병마우후(兵馬虞侯) |
형제 | (형) 구좌익(具左翼), 구우익(具右翼) (서형) 구대익(具大翼) (서제) 구두익(具斗翼)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구후익(具後翼) |
총론
[1659년(효종 10)~졸년미상.] 조선 후기 숙종~영조 때의 무신. 행직(行職)은 북병사(北兵使)이다. 자(字)는 익보(翼甫)이다.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함경남도 병마우후(兵馬虞侯)구훤(具翧)이다.
숙종 시대 활동
1686년(숙종 12) 별시(別試) 무과의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28세였다.[<무과방목>]
경종 시대 활동
1724년(경종 4)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에 임명되었다.
영조 시대 활동
1725년(영조 1) 사간원으로부터 인물됨이 탐욕스러워서 백성들을 수탈하고 있으며, 형벌을 제멋대로 적용한다는 죄목으로 탄핵을 당한 후, 부호군(副護軍)이 되었다. 그 해에 정시(庭試) 무과의 시관(試官)에 임명되었으나, 이유 없이 패초(牌招)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추고(推考)당하였다.
1727년(영조 3) 남병사(南兵使)에 임명되었다.
1729년(영조 5) 북병사(北兵使)로 재직 중이었으나, 사헌부 지평(持平)남위로(南渭老)로부터 노쇠하여 정신이 흐린데다가 명성마저 부족하다는 탄핵을 받고 체직되었다.
참고문헌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영조]
- 『무과방목(武科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