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具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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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24년(중종19)~1558(명종13) = 35세]. 조선 중기 중종(中宗)~명종(明宗) 때의 척신(戚臣). 중종의 사위. 옛 이름은 구항(具沆)인데, 자는 태초(太初)이다.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능천부원군(綾川府院君)구수영(具壽永)의 손자이다.

중종-명종시대 활동

1534년(중종29) 나이 11세 때 중종(中宗)과 김숙원(金淑媛)의 딸인 숙정옹주(淑靜翁主)와 혼인하여 능창위(綾昌尉)에 봉해졌다. 일찍이 대궐로 들어갔을 때 중종이 절구(絶句)를 지으라고 명하자 곧바로 시를 지었는데, 시문의 운치가 빼어났으므로 중종이 대단히 기특하게 여기고 사랑하였다.

1545년(명종1) 명종이 즉위하고 ‘위사공신(衛社功臣)’을 책훈(策勳)하면서,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책봉하고 종2품상 자의대부(資義大夫)로 올렸다. 1555년(명종10) 사옹원(司甕院)제조(提調)에 임명되었는데, 1558년(명종13) 명(明)나라 칙사(勅使)가 와서 동궁(東宮)을 책봉할 때 칙사(勅使)를 대접하는 일을 맡아서 실수 없이 잘 접대하였기 때문에, 사신이 돌아간 다음에 정2품하 통헌대부(通憲大夫)로 승품하였다. 그 해 7월 병을 얻어 위독하자, 명종이 태의(太醫)를 보내어 치료하였으나 끝내 죽었는데, 그 때 나이가 겨우 35세였다.

성품과 일화

구한(具澣)의 성품과 자질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의 성품은 온화하고 용모와 자태가 단아하였으며, 젊은 나이에 부마(駙馬)로서 이미 부귀(富貴)하게 되었으나 스스로의 몸가짐을 낮추어 남에게 지극히 겸손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번거롭게 일일이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책을 읽고 글을 지었으며, 그림도 잘 그렸다. 책을 몹시 좋아하여 내객(來客)을 일체 받지 않고 서재에 단정히 앉아 책을 읽었는데, 유학자의 기풍이 있었다. 중종이 여가가 있을 때마다 자주 그를 궁전으로 불러들여 안전(案前)에서 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리게 하였는데, 그때마다 임금이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군신간의 격식을 버리고 장인과 사위 간의 정을 나누었다.

묘소와 성품

묘소는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동쪽 대자산(大慈山)의 언덕에 있는데, 홍섬(洪暹)이 지은 비명(碑銘)이 남아있다.

관력, 행적

참고문헌

  • 『인종실록(仁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 『청음집(淸陰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