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옥(具允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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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20년(숙종 46)∼1792년(정조 16) = 73세.] 조선 후기 영조~정조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도승지, 병조 판서, 의금부 판사(判事)이다. 자(字)는 성집(聖集)이다.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한성부 판윤(判尹)구택규(具宅奎)이고, 어머니 남양홍씨(南陽洪氏)는 사옹원 첨정(僉正)홍우채(洪禹采)의 딸이다.

영조 시대 활동

1753년(영조 29) 알성(謁聖) 문과의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34세였다.[<문과방목>] 바로 승문원 정자(正字)에 보임되었고, 이후 병조 정랑(正郞)과 사헌부 지평(持平)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759년(영조 35) 승지로 발탁되었는데, 영조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5개월도 채 안되어 도승지(都承旨)로 영전하였다.

1763년(영조 35) 예조 판서가 되었고, 1768년(영조 44) 동지사(冬至使)의 부사(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771년(영조 47) 병조 판서가 되었고, 1774년(영조 50) 호조 판서에 임명되었다.

정조 시대 활동

1776년(정조 즉위) 공조 판서가 되었고, 이후 다시 예조 판서⋅호조 판서⋅병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70세 때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뒤 1790년(정조 14) 의금부 판사(判事)가 되었다.

묘소와 후손

묘소는 황해도 장단(長湍)의 송서면(松西面) 석호동(石好洞)에 있고, 홍양호(洪良浩)가 지은 묘표(墓表)가 남아있다.

부인 안동김씨(安東金氏)는 김우갑(金禹甲)의 딸인데 슬하에 2남을 두었다. 장남은 판서를 지낸 구익(具㢞)이고, 차남은 목사(牧使)를 지낸 구응(具膺)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일성록(日省錄)』[영조]
  • 『일성록(日省錄)』[정조]
  • 『국조방목(國朝榜目)』
  • 『가례도감의궤 영조정순왕후(嘉禮都監儀軌英祖貞純王后)』
  • 『가암유고(可庵遺稿)』
  • 『가오고략(嘉梧藁略)』
  •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
  • 『관암전서(冠巖全書)』
  • 『능허관만고(凌虛關漫稿)』
  • 『만기요람(萬機要覽)』
  • 『명의록(明義錄)』
  • 『번암집(樊巖集)』
  • 『산목헌집(山木軒集)』
  • 『연행기사(燕行記事)』
  • 『운석유고(雲石遺稿)』
  • 『이계집(耳溪集)』
  • 『해사일기(海槎日記)』
  • 『홍재전서(弘齋全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