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신(具允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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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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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구윤신 |
한글표제 | 구윤신 |
한자표제 | 具允愼 |
분야 | 인물 |
유형 | 무신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중종 |
집필자 | 이현숙 |
자 | 신지(愼之) |
출신 | 양반 |
성별 | 남자 |
본관 | 능성(綾城) |
주거지 | 서울[京] |
부 | 구감(具瑊); 진위현령(振威縣令)→(증) 승정원 도승지 |
형제 | (형) 구지신(具之愼), 구현신(具賢愼)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구윤신(具允愼) |
총론
[생몰 연대 미상.] 조선 중기 중종 때의 무신. 행직(行職)은 겸사복(兼司僕), 경상우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이다. 자(字)는 신지(愼之)이다.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진위현령(振威縣令)구감(具瑊)이다.
중종 시대 활동
1513년(중종 8) 식년(式年) 무과의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무과방목>] 겸사복(兼司僕)에서 창성부사(昌城府使)가 되었다가, 경흥부사(慶興府使)에 임명되었다.
1518년(중종 13) 경상우도 수군절도사가 되었다.
1520년(중종 15) 장단부사(長湍府使)에 임명되었다. 구윤신은 원래 남양부사(南陽府使)로 발령이 나기를 원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그 지역이 잔폐(殘弊)하다는 이유를 들어 피하였다. 사헌부가 그를 파직시킬 것을 요청하였으나, 중종은 중요한 일도 아닌데 너무 심하게 논박하지 말라며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무과방목(武科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