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필(具聖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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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95년(숙종 21)∼졸년미상.] 조선 후기 영조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황주진 병마첨절제사(黃州鎭兵馬僉節制使), 경기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이다. 자(字)는 뇌여(賚汝)이다.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영릉참봉(英陵參奉)구수정(具守禎)이고, 생부 구상정(具尙禎)은 사옹원 첨정(僉正)이다.

영조 시대 활동

1727년(영조 3) 사마시(司馬試)에서 진사(進士)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33세였다.[<사마방목>]

1728년(영조 4) 후릉참봉(厚陵參奉)으로 재직할 때, 사헌부로부터 그는 본디 모리배로서 전혀 사대부다운 면모가 없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734년(영조 10) 전주판관(全州判官)으로 재임하면서, 축성(築城)하는데 공을 세웠다고 하여 가자(加資)되었으며, 우의정송인명(宋寅明)으로부터 일 처리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1739년(영조 15) 황해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가 되었고, 1742년(영조 18) 장례원 판결사(判決事)를 거쳐서, 1745년(영조 21) 경기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에 임명되었다. 이때 홍문관 수찬(修撰)홍익삼(洪益三)은 구성필이 진사 출신의 음관(蔭官)으로서, 문관(文官)⋅음관(蔭官)⋅무관(武官)의 모든 관직에 오르면서, 관직 체계가 문란하게 되었다고 지적하였으므로, 이후 구성필을 무신의 예에 따라 등용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이런 문제를 놓고 논쟁이 계속되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사마방목(司馬榜目)』
  • 『경오연행록(庚午燕行錄)』
  • 『귀록집(歸鹿集)』
  • 『서원등록(書院謄錄)』
  • 『심암유고(心庵遺稿)』
  • 『직암집(直菴集)』
  • 『포암집(圃巖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