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舊磨)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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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구마 |
한글표제 | 구마 |
한자표제 | 舊磨 |
관련어 | 신마(新磨), 호식(戶式), 토식(土式) |
분야 | 경제/재정/환곡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문용식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구마(舊磨)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순조실록』 20년 7월 23일 |
18세기 후반 이후 함경북도 지역에서 관의 각종 물품 구입 비용을 곡식으로 환산해 정하고 백성에게 징수한 것.
내용
함경북도 지역의 길주로부터 명천·경성·부령 등 경흥에 이르는 10개 고을에는 화폐 유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의 각종 물품은 항상 시가(時價)에 따라 임시로 사서 써 왔는데, 물품을 구입하는 비용을 곡식으로 환산하여 정하고 신마라고 하였다. 신마의 법은 새로 수령이 부임하면 1년간 관아에 소용되는 모든 물품을 계산하고 그 비용을 곡식으로 환산한 다음 백성들에게 부과하는 것이었다. 관청의 용도는 먼저 창고에 보관된 곡물 중 전미(田米)를 마음대로 가져다 쓰고는 곧바로 ‘신마’라는 명목으로 곡식으로 환산한 액수를 호조에서 관리하는 환곡에 옮겨서 기록하여 징수하였다. 이 액수를 연말까지 다 받지 못한 것은 다시 다음 해에 신마에 보태어 기록하고 ‘구마(舊磨)’라는 이름을 붙였다.
신마라는 명목으로 징수하다 보면 호조의 환곡과 지방관이 비용을 위하여 백성에게 징수하는 잡세(雜稅)가 서로 뒤섞이게 되었다. 또 호조 환곡은 전미이고, 잡세 명목의 신마는 잡곡이기 때문에 전미와 잡곡을 환산하는 데 있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였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곡물을 환산할 때에 호식(戶式)과 토식(土式)을 사용하고 있었다. 호식은 바로 호조의 원작곡(元作穀)의 식례(式例)인데, 조·보리는 2석 7두 5승(升), 기장·귀보리·메밀은 3석 11두 영(零)을 각각 전미(田米) 1석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또 토식은 바로 각 고을 본토의 법으로, 전미 1석 대신 조·보리는 각각 2석이고 기장·귀보리·메밀은 3석인 것이었다. 나누어 주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을 막론하고 순전히 토식을 사용하고, 원회곡(元會穀)의 전미를 계산하여 감할 때에는 호식 13두로 계산하여 감하므로 쌀은 1석마다 3두가 남고 피곡(皮穀)은 11두 2승 영이 남았다.
환곡은 농작 상황과 받은 사람의 사정에 따라 징수하지 못한 액수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징수하지 못한 부분을 신마 혹은 구마의 명목으로 백성에게 징수하였기 때문에 민의 입장에서는 그해에 내야 하는 액수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지방관은 임기가 끝나 돌아갈 때에 빚이 있으면 일체를 이방(吏房) 아전에게 위임하여 구마 중 더 기록해 장수하는 폐단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용례
所謂作穀云者 北十州以無錢貨 故官雜種 常以時價 臨時買用 自夫數十年來 一切作穀 名曰新磨 其法 新官到任 卽使統計一年所用 全數作穀 分俵於民 而官用則先就倉穀中田米 惟意取用 乃以新磨作穀條 移錄元還中徵捧 及夫歲終而未及盡納者 更爲添錄於明年新磨 名曰舊磨(『순조실록』 20년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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