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흠(郭之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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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601년(선조 34)∼1666년(현종 7) = 66세.] 조선 중기 인조~현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사헌부 집의(執義)이다. 자(字)는 흠로(欽魯), 호(號)는 지포(芝浦)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성균관 직강(直講)곽희태(郭希泰)이며, 어머니 이씨(李氏)는 이제남(李悌男)의 딸이다.

인조 시대 활동

1630년(인조 8) 사마시(司馬試)에서 진사(進士)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30세였다.[<사마방목>] 1646년(인조 24) 식년(式年) 문과의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46세였다.[<문과방목>] 바로 사간원 정언(正言)에 보임되었다.

1647년(인조 25) 세자시강원 문학(文學)으로서 왜차 접위관(倭差接慰官)이 되어 대마도의 사신을 접대하였고, 이어 사헌부 지평(持平)에 임명되었다.

효종 시대 활동

1649년(효종 즉위) 사헌부 장령(掌令)이 되었으며, 1656년(효종 7) 외방으로 나가 평산군수(平山郡守)를 역임하였다.

효종 시대 활동

1660년(현종 1) 조정으로 들어와 사간원 사간(司諫)에 임명되었다.

1661년(현종 2) 사헌부 집의(執義)가 되었는데, 정언권격(權格)과 함께 윤선도(尹善道)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는 조경(趙絅)을 귀양 보낼 것을 주장하였다.

후손

부인 안동김씨(安東金氏)는 도사(都事)김옥(金鋈)의 딸인데. 자녀는 5남을 두었다. 장남은 도정(都正)곽창징(郭昌徵)이고, 차남은 곽대징(郭大徵)이며, 3남은 곽상징(郭相徵)이다. 4남은 곽홍징(郭弘徵)이고, 5남은 왕자 사부(王子師傅)를 지낸 곽시징(郭始徵)이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인조]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기언(記言)』
  • 『노봉집(老峯集)』
  • 『동명집(東溟集)』
  • 『문곡집(文谷集)』
  • 『미수기언(眉叟記言)』
  • 『백호전서(白湖全書)』
  • 『변례집요(邊例集要)』
  • 『송자대전(宋子大全)』
  • 『연도기행(燕途紀行)』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용주유고(龍洲遺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