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원(郭之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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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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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곽지원 |
한글표제 | 곽지원 |
한자표제 | 郭之元 |
분야 | 인물 |
유형 | 역관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중종~선조 |
집필자 | 이현숙 |
자 | 인숙(仁叔) |
출신 | 양반 |
성별 | 남자 |
본관 | 청주(淸州) |
주거지 | 서울[京]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곽지원(郭之元) |
총론
[생년미상~1587년(선조 20). 조선 중기 중종~선조 때의 역관(譯官). 행직(行職)은 사역원 판사(判事)이다. 자(字)는 인숙(仁叔)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중종 시대 활동
1540년(중종 35) 식년시(式年試) 역과로 급제하였다.[<역과방목>]
명종 시대 활동
1556년(명종 11) 사행을 따라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558년(명종 13) 세자책봉을 축하하러 온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였다.
1560년(명종 15) 동지사(冬至使)오상(吳祥)을 따라 명나라에 가는 도중 여양역(閭陽驛)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거란족 1만여 명이 쳐들어왔다. 이때 역승(驛丞)이 성문을 열고 항복하려 하자, 곽지원은 역승에게 성을 꼭 지켜야한다고 권유하였고, 일행 중의 군관도 편전(片箭)으로 적을 쏘아 포위망을 무너뜨렸다. 총병(摠兵) 양조(楊照)가 곽지원을 불러서 “오늘날 일은 너의 힘이다.” 라며 그의 공로와 용기를 높이 치하하면서, 그의 편전을 가지고 가서 자세히 보았다고 한다.
선조 시대 활동
1573년(선조 6) 주청사(奏請使) 이후백(李後白)의 역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587년(선조 20) 진사사(陳謝使) 배삼익(裵三益)의 역관으로 명나라에 갔다가 중도에 병에 걸려 객사하였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역과방목(譯科榜目)』
- 『금역당집(琴易堂集)』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 『성호사설(星湖僿說)』
- 『어우집(於于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임연재집(臨淵齋集)』
- 『제봉집(霽峯集)』
- 『하곡집(荷谷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