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태익(高台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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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생몰 연대 미상.] 조선 전기 단종~성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사재감 부정(副正)이다. 자(字)는 문좌(文佐)이다. 봉작(封爵)은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이다.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아버지는 한성부 윤(尹)고득종(高得宗)이다.

단종 시대 활동

1454년(단종 2) 알성(謁聖) 문과의 정과(丁科)로 급제하였다.[<문과방목>] 바로 승문원 권지정자(權知正字)에 보임되었다.

세조 시대 활동

1455년(세조 1)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 이후 승문원 박사(博士)로 승진하였다.

1462년(세조 8) 병조 좌랑(佐郞)에 임명되었다. 그 해 7월 세조가 서교(西郊)에서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였는데, 좌랑고태익은 사냥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를 본 세조가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을 시켜 고태익의 갓[笠]을 벗기도록 하였는데, 고태익은 오히려 종자(從者)의 갓[笠]을 쓰고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결국 그는 왕명 불복종의 죄로 장(杖) 1백 대에 강진현(康津縣)으로 유배되었다.

예종 시대 활동

1469년(예종 1) 서용되어 형조 정랑(正郞)이 되었다.

성종 시대 활동

1476년(성종 7) 사재감 부정(副正)을 거쳐서, 1479년(성종 10) 부평부사(富平府使)가 되었다.

후손

첫째 부인 야로송씨(冶爐宋氏)는 사직(司直)송소(宋紹)의 딸이다. 둘째 부인 벽진이씨(碧珍李氏)는 이조 참판이계전(李季專)의 딸이다. 슬하에 3남을 두었는데, 장남은 고세창(高世昌)이고, 차남은 고영명(高永命)이며, 삼남은 고세영(高世英)이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고씨세록(高氏世祿)』
  • 『남명집(南冥集)』
  • 『야계집(倻溪集)』
  • 『증보 탐라지(增補 耽羅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