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처량(高處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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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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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고처량 |
한글표제 | 고처량 |
한자표제 | 高處亮 |
분야 | 인물 |
유형 | 문신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숙종~영조 |
집필자 | 이현숙 |
자 | 명숙(明叔) |
출신 | 양반 |
성별 | 남자 |
출생 | 1688년(숙종 14) |
사망 | 1762년(영조 38) |
본관 | 제주(濟州) |
주거지 | 제주 |
조부 | 고운일(高雲一) |
부 | 고의찰(高義察) |
모_외조 | 송씨(宋氏) |
처_장인 | 김씨(金氏); 김윤우(金胤雨)의 딸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고처량(高處亮) |
총론
[1688년(숙종 14)∼1762년(영조 38) = 75세.] 조선 후기 숙종~영조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진해현감(鎭海縣監)이다. 자(字)는 명숙(明叔)이다.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제주 화북동(禾北洞)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고의찰(高義察)이다.
숙종 시대 활동
1717년(숙종 43) 식년(式年) 문과의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30세였다.[<문과방목>]
경종 시대 활동
1721년(경종 1) 이조 좌랑(佐郞)이 되었다.
영조 시대 활동
1725년(영조 1) 구례현감(求禮縣監)에 임명되었으나, 신임사화(辛壬士禍)의 여파로 조정이 불안해지자 귀향하였다.
1733년(영조 9) 제주 독운위유어사(督運慰諭御史)심성희(沈聖希)의 추천으로 봉상시 판관(判官)이 되었고, 이듬해 진해현감(鎭海縣監)을 역임하였다. 귀향하여 제주향교의 교수(敎授)로 있으면서 문묘를 확장 수리하고, 서당을 세우고, 유림의 청금록(靑衿錄)을 성안하는 등, 향촌(鄕村)을 위한 사업에 공헌하였다.
1762년(영조 38) 죽었는데, 향년이 75세였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고씨세록』
- 『증보 탐라지』
- 『탐라성주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