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高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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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7년 4월에 명나라가 영종 복위를 축하하는 조선 사절에 대한 감사의 인사로 조선에 파견한 사신.

개설

명나라는 1457년(세조 3) 4월에 조선이 명나라 영종(英宗)의 복위를 축하하는 사절을 보내온 것에 대하여 감사의 인사와 함께 세조와 왕비에게 비단과 옷의 겉감과 안감을 내려 주기 위하여 고윤 등을 사신으로 보냈다. 고윤은 조선에서 많은 물건을 요구하는 등 물욕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활동 사항

고윤은 감사의 인사와 함께 황제가 세조와 왕비에게 내리는 비단인 금폐(錦幣)와 옷의 겉감과 안찝인 표리(表裏)를 가지고 온 사행단의 일원이었다. 당시 정사는 진감(陳鑑)이었다. 명나라 영종은 선덕제(宣德帝)의 장남으로 9세에 제위에 올랐다가 1449년 오이라트(Oirāt)족 에센[也先]의 침입 때 사로잡히는 바람[토목의 변(土木之變)]에 황위를 잃었다. 1450년에 명에 송환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그의 동생인 경태제(景泰帝)가 재위에 올라 있었다. 유폐되어 있다가 1457년 다시 재위에 올랐다. 조선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축하 사절을 보냈던 것이다.

6월 3일 세조는 면복(冕服)을 갖추고 백관(百官)들을 거느리고 나가, 한양에 도착한 사신단을 모화관(慕華館)에서 맞이하였다(『세조실록』 3년 6월 3일). 5일에 사신단은 성균관에 가서 공자의 신위에 참배하는 알성례(謁聖禮)를 마치고, 고윤이 시험문제를 내어 성균관 유생들에게 시험을 치르도록 하였다(『세조실록』 3년 6월 5일).

당시 사신단으로 온 인물들은 조선에서 많은 물품을 요구하였다. 고윤은 물건이 적은 것을 보고 성난 기색을 얼굴에 드러냈다. 도감(都監)에서 가는 삼실로 곱게 짠 고급 베인 세포(細布)를 후하게 보내 주고 나서야 기뻐하여 칭찬과 감사를 그치지 않았다(『세조실록』 3년 6월 11일). 그에 대한 평가를 보면, 교만방자하고 남을 업신여기며, 속마음이 검기가 정사였던 진감보다 더하였다고 하였다(『세조실록』 3년 6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