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관(考試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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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과를 시행할 때 출제와 채점을 담당한 시관.

개설

고시관은 문과의 각 단계마다 소정의 절차에 따라서 시험문제를 출제하여 시험을 실시하고 과장의 질서를 유지하며, 답안지를 채점하여 합격자를 발표하는 것으로 여러 시관들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때문에 조선후기 정치 세력 간의 갈등과 대립이 깊어 문과 급제자를 양산해야 했던 시기에는 특히 별시(別試)에서 시관이 사사로운 정을 행사하는 문제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문과의 실시를 주관한 시관은 기능상 크게 고시관(考試官)·감시관(監試官)·차비관(差備官)으로 분류되었다. 이 중에서 고시관은 고관(考官)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다시 해당 과시(科試)의 총책임자라 할 수 있는 상시관(上試官)과 그를 보좌하는 참시관(參試官)으로 나뉘었다. 상시관과 참시관은 각각 주문고관(主文考官)과 부시관(副試官)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고시관의 임무는 소정의 절차에 따라서 시험문제를 출제하여 시험을 실시하고 과장의 질서를 유지하며, 답안지를 채점하여 합격자를 발표하는 일로, 시관의 역할 중에서 가장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기본 법제라고 할 수 있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문과 식년시의 초시와 복시에서 시관에 대한 규정이 고시관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만큼 그 역할이 다른 시관에 비하여 중요했기 때문이다.

변천

문과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식년시였는데, 이 식년시의 초시·복시·전시 3단계에서도 가장 핵심 역할을 한 것은 고시관이었다. 특히, 복시에서 선발한 33명을 전정(前庭)에서 시험 보아 등제(登第)를 결정하는 전시에서는 고시관에 대한 명칭을 달리하여 상시관을 독권관(讀券官), 참시관을 대독관(對讀官)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송대(宋代)의 전시에서 시권을 채점할 때 왕 앞에서 독권관이 시권을 낭독하고 대독관이 그 옆에서 오독(誤讀)이 있는지를 살핀 데서 유래하였다. 전시의 독권관과 대독관에 대하여 『경국대전』에서는 규정이 명확하지 않았으나, 2품 이상의 3명을 권독관, 3품 이하의 5명을 대독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후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속대전』에서는 식년시의 전시에서 종2품 이상 2명을 독권관, 정3품 이하 4명을 대독관으로 삼게 한 것 이외에 의정(議政) 1명을 명관(命官)으로 삼도록 하는 변화가 있었다. 문과 실시에서 고시관은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답안지를 채점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였다. 따라서 조선후기 정치 세력 간의 갈등과 대립이 깊어 문과 급제자를 양산해야 했던 광해군, 숙종 재위 후반기 등의 시기에는 특히 고시관이 비정기적으로 실행되는 별시를 불공정하게 실시한다는 문제점들이 계속 나타났다(『광해군일기(정초본)』 5년 4월 15일)(『숙종실록』 30년 9월 24일).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이성무, 『한국의 과거제도』(개정증보판), 집문당, 1994.
  • 조좌호, 『한국과거제도사연구』, 범우사, 1996.
  • 차미희, 『조선시대 문과제도연구』, 국학자료원, 1999.
  • 차미희, 『조선시대 과거시험과 유생의 삶』,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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