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안(高尙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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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53년(명종 8)~1623년(인조 1) = 71세.] 조선 중기 선조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풍기군수(豊基郡守)이다. 자(字)는 사물(思勿)이고, 호(號)는 태촌(泰村)이다. 본관은 개성(開城)이고, 거주지는 경상북도 용궁(龍宮)의 왕태동(旺泰洞)이다. 아버지는 전부장(前部將) 고천우(高天佑)이고, 어머니 신천강씨(信川康氏)는 습독강희언(康希彦)의 딸이다.

선조 시대 활동

1573년(선조 6) 사마시(司馬試)의 진사(進士)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21세였다.[<사마방목>]

1576년(선조 9) 식년(式年)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24세였다.[<문과방목>]

1584년(선조 17) 사헌부 감찰(監察)이 되었다. 이후 형조 좌랑(佐郞)과 지례현감(知禮縣監)을 거쳐서, 1602년(선조 35) 함양군수(咸陽郡守)가 되었다.

1606년(선조 34) 울산판관(蔚山判官)이 되었다가, 1607년(선조 35) 풍기군수(豊基郡守)에 임명되었다.

광해군 시대 활동

광해군 즉위 후, 조정이 혼란해지자, 가족을 이끌고 상주의 초동(草洞)으로 들어가 농사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인조 시대 활동

1623년(인조 1) 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향년이 71세였다. 저서로 『태촌집(泰村集)』, 『효빈잡기(效顰雜記)』가 남아있다. 농가월령(農家月令) 1편을 지어 절기별 농사 절차를 설명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하였으므로,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의 작자로 추측한다.

묘소와 후손

묘소는 경상북도 상주의 선암(仙巖)에 있다.

부인 순천장씨(順天張氏)는 장일(張逸)의 딸인데, 자녀는 3남 4녀를 두었다. 장남은 고이절(高爾節)이고, 차남은 고이행(高爾行)이며, 3남은 고이령(高爾齡)이다. 장녀는 금개(琴愷)의 처가 되었고, 차녀는 권명남(權命南)의 처가 되었으며, 3녀는 이문욱(李文煜)의 처가 되었고, 4녀는 정산보(鄭山甫)의 처가 되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감수재집(感樹齋集)』
  • 『개암집(開巖集)』
  • 『고대일록(孤臺日錄)』
  • 『동원집(東園集)』
  • 『모당집(慕堂集)』
  • 『성재집(惺齋集)』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월봉집(月峯集)』
  • 『유연당집(悠然堂集)』
  •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 『제암집(制庵集)』
  • 『청대집(淸臺集)』
  • 『추담집(秋潭集)』
  • 『취사집(炊沙集)』
  • 『태촌집(泰村集)』
  • 『화곡집(禾谷集)』
  • 『효빈잡기(效顰雜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