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현(高山縣)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일대에 설치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1018년(고려 현종 9)에 전주목 소속이었다. 나중에 감무를 두고 진동(珍同)을 겸임하였다. 1391년(고려 공양왕 3)에 다시 운제(雲梯)를 겸임하였다. 조선이 건국한 후 1392년(태조 1)에는 운제현을 전주목 관할에서 고산현으로 옮겼다. 1455년(세조 1)에 고산현이 전라도 전주도(全州道)의 좌익을 맡았다. 1457년(세조 3)에는 고산현이 전라도 7진 가운데 하나인 전주진에 속했다. 1895년(고종 32)에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되면서 해남현이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사』에는 1018년(고려 현종 9)에 고산현을 전주목에 소속시키고 나중에 감무를 두고 진동을 겸임한 것으로 되어 있다. 1391년에 다시 운제를 겸임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1392년(태조 1)에 운제현을 전주목 관할에서 고산현으로 옮겼다.

조직 및 역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산현에 종6품 현감(縣監) 1인과 종9품 훈도(訓導) 1인을 둔다고 되어 있다. 현감은 종6품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를 겸하였다. 훈도는 5백 호 이상인 고을에는 모두 두기로 한 것에 따른 것이다(『세종실록』 12년 1월 21일). 고산현감 밑에 중앙 관제와 마찬가지로 이·호·예·병·형·공 6방을 두었다. 현감 아래 향청(鄕廳)의 향임(鄕任)으로 좌수(座首)와 별감(別監) 등을 두었다. 이들은 6방을 나누어 장악하여 현감의 지방 행정을 보좌하였다. 향임은 대부분 부세의 분배와 징수, 향풍의 교정, 향리의 감찰 등을 맡았다.

변천

1455년(세조 1)에는 각 도의 내지(內地)에도 거진(巨鎭)을 설치하고 주변의 여러 고을을 중·좌·우익으로 나누어서 소속을 정하였다. 이때 고산을 전라도 전주도의 좌익으로 삼았다(『세조실록』 1년 9월 11일).

1457년에 각 도의 중·좌·우익을 폐지하고 거진을 설치하였다. 이른바 진관(鎭管) 체제로 바뀌면서 전라도에는 7곳에 거진이 설치되었는데 고산현은 전주진에 속했다(『세조실록』 3년 10월 20일).

조선후기에는 여산에 전라후영(全羅後營)이 설치되었고 고산은 전라후영의 속읍으로 전라후영의 병수(兵數)는 마병(馬兵) 4초(哨), 속오(束伍) 34초, 표하군(標下軍) 317명, 당보군(塘報軍) 117명, 수솔군(隨率軍) 629명으로 되어 있다.

1895년에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되면서 해남현이 폐지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전국 23부를 다시 13도로 개정할 때 전라남도와 전라북도가 분리되었다. 전라북도는 수부(首府)를 전주에 두었으며, 고산군을 비롯한 26개 군으로 편성되었다. 1914년에는 그것이 고산면이 되어 전주군에 편입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칙령(勅令)』
  • 『관보(官報)』
  • 『대동지지(大東地志)』
  • 『여지도서(輿地圖書)』
  • 『의안·칙령(議案·勅令)』
  • 박종기, 『지배와 자율의 공간, 고려의 지방사회』, 푸른역사, 2002.
  • 손정묵, 『한국지방제도·정치사연구(상)-갑오경장~일제강점기-』, 일지사, 2001.
  • 이수건, 『조선시대 지방행정사』, 민음사, 1989.
  • 이존희, 『조선시대 지방행정제도 연구』, 일지사, 1990.
  • 『완주군지』, 완주군지편찬위원회, 1996.
  • 『전라남도지』, 전라남도지편찬위원회, 1993.
  • 『전라북도지』, 전라북도, 1989.
  • 『전주시사』, 전주시사편찬위원회,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