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군(古阜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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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과 부안군 일부 지역에 설치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본래는 백제의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인데, 신라시대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고부가 영주(瀛州)로 이름이 바뀌었다. 951년(고려 광종 2)에 안남도호부로 고쳤다가, 1019년(고려 현종 10)에 원래대로 고부군이 되었다. 충렬왕 때 영광군에 합쳤다가 곧 복구되었다. 조선이 건국한 후에도 고부군이었다. 1409년(태종 9)에 고부군이 관할해 오던 4향 2소 2부곡을 폐지하여 고부군에 편입하였다. 1455년(세조 1)에 고부군이 전라도 부안진(扶安鎭)의 좌익을 맡았다. 1457년(세조 3)에는 고부군이 전라도 7진 가운데 하나인 부안진에 속했다. 1783년(정조 7)에 고부군의 내려간 읍호(邑號)를 회복시킨 적이 있었다. 1895년(고종 32)에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되면서 고부군이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사』에는 936년(고려 태조 19)에 고부군을 승격시켜서 영주관찰사로 불렀다. 951년(고려 광종 2)에 안남도호부로 고쳤으며, 1019년(고려 현종 10)에는 다시 고부군으로 하였다. 충렬왕 때 영광군에 합쳤다가 얼마 뒤에 다시 복구하였다. 조선이 건국한 후에도 고부군으로 존재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1409년(태종 9)에 도관찰사(都觀察使)윤향(尹向)이 건의하여,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전라도의 현과 향·소·부곡은 거의 모두 본 고을에 합쳐졌다. 이때 고부군이 관할해 오던 4향 2소 2부곡이 고부군의 직촌(直村)이 되었다. 4향은 부안(富安)·황조(荒調)·수금(水金)·음성(音聲)이고, 2소는 덕림(德林)과 독변(禿邊)이며, 2부곡은 모조(毛助)와 우일(雨日)이다. 이로써 그곳 주민들이 토호(土豪)나 향리(鄕吏)의 사적 지배에서 벗어나 점차 공민화(公民化)되었다.

조직 및 역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부군에 종4품 군수(郡守) 1인과 종9품 훈도(訓導) 1인을 둔다고 되어 있다. 군수는 종4품 병마동첨절제사(兵馬同僉節制使)를 겸하였다. 훈도는 5백 호 이상인 고을에는 모두 두기로 한 것에 따른 것이다(『세종실록』 12년 1월 21일). 고부군수 밑에 중앙 관제와 마찬가지로 이·호·예·병·형·공 6방을 두었다. 군수 아래 향청(鄕廳)의 향임(鄕任)으로 좌수(座首)와 별감(別監) 등을 두었다. 이들은 6방을 나누어 장악하여 군수의 지방 행정을 보좌하였다. 향임은 대부분 부세의 분배와 징수, 향풍의 교정, 향리의 감찰 등을 맡았다.

변천

1783년에 이전에 강등되었던 고부군의 읍호(邑號)가 기한이 다 차서 원래대로 회복되었다(『정조실록』 7년 3월 29일). 그런데 고부군의 읍호가 내려간 시기와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1455년에는 각 도의 내지(內地)에도 거진(巨鎭)을 설치하고 인근 고을을 익(翼)에 분속시켰다. 고부군을 전라도 부안진(扶安鎭)의 좌익으로 삼았다(『세조실록』 1년 9월 11일).

1457년에 각 도의 중·좌·우익을 폐지하고 거진을 설치하였다. 이른바 진관(鎭管) 체제로 바뀌면서 전라도에는 7곳에 거진이 설치되었는데 부안도 그중 하나로 고부를 비롯하여 임피·옥구·만경·김제·정읍·흥덕이 전라도의 부안진에 속했다(『세조실록』 3년 10월 20일).

진관 체제는 그 뒤로도 조금씩 변화를 거치면서 『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고부가 속한 부안진은 전주진관으로 편입되었다.

조선후기에는 전주거진이 전라중영(全羅中營)으로 바뀌었다. 전라중영의 속읍은 전주·김제·고부·진안·임실·금구·만경·부안 8곳이며, 병수(兵數)는 마병(馬兵) 5초(哨), 속오(束伍) 46초, 표하군(標下軍) 454명, 당보군(塘報軍) 59명, 수솔군(隨率軍) 689명으로 되어 있다.

1895년에 8도 체제 폐지와 함께 23부제가 시행되면서 고부군이 폐지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전국 23부를 다시 13도로 개정할 때 전라남도와 전라북도가 분리되었다. 전라북도는 수부(首府)를 전주에 두었으며, 고부군을 비롯한 26개 군으로 편성되었다. 1914년에 백산·거마·덕림 3개 면은 부안군 소속이 되고, 나머지는 정읍군으로 통폐합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대동지지(大東地志)』
  • 『여지도서(輿地圖書)』
  • 『의안·칙령(議案·勅令)』
  • 박종기, 『지배와 자율의 공간, 고려의 지방사회』, 푸른역사, 2002.
  • 손정묵, 『한국지방제도·정치사연구(상)-갑오경장~일제강점기-』, 일지사, 2001.
  • 이수건, 『조선시대 지방행정사』, 민음사, 1989.
  • 이존희, 『조선시대 지방행정제도 연구』, 일지사, 1990.
  • 『전라남도지』, 전라남도지편찬위원회, 1993.
  • 『전라북도지』, 전라북도, 1989.
  • 『정읍시사』, 정읍시사편찬위원회,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