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전친향의(啓命殿親享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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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개성에 있던 태조진전(太祖眞殿)인 목청전(穆淸殿)에 왕이 직접 제사를 올릴 때의 의식 절차.

개설

조선초기부터 국조인 태조와 연관된 여러 지역에 태조 어용전(御容殿)을 건립하고 태조의 초상을 봉안하였다. 태조가 태어난 옛 집인 영흥과 고려의 옛 중심지인 평양·경주 등에 전각을 세워 초상을 봉안했으며, 전주에도 경주의 어진(御眞)을 모사하여 봉안하였다. 이들은 당초에 어용전이라고 불렸으나 1412년(태종 12) 이래로 태조진전으로 통칭되었다. 계명전(啓命殿)은 외방의 태조진전 중 가장 마지막에 건립된 곳이다.

절차 및 내용

계명전은 태종이 계획하고, 1418년(세종 즉위)부터 진전 건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세종은 공사의 진척을 보기 위해 직접 행차하기도 했다. 계명전이 태조 어진을 봉안한 후 1420년(세종 2) 계명전에 행차하여 직접 제사를 올렸다(『세종실록』 2년 윤1월 28일). 이 의절은 이때의 친제를 위해 만들어졌다. 계명전이 목청전으로 명칭이 바뀐 후 친제도 이에 준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의식은 의례를 거행하기 전 준비 과정과 당일의 의례 절차로 구분된다. 준비 과정은 재계(齋戒), 친향을 위한 배설(排設), 진설(陳設) 등이다. 당일의 의례는 사배례(四拜禮), 삼헌(三獻), 음복(飮福), 철변두(撤籩豆), 망예(望瘞)의 순서로 진행된다.

재계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하는 일을 말한다. 본 의식을 위해서는 상왕과 왕이 3일 동안 재계를 행했다. 제사 3일 전에 상왕과 왕은 별전에서 마음으로 재계하고, 하루 전에는 정전에서 자면서 오직 제사와 관련된 준비를 행한다. 모든 집사관(執事官)과 어가(御鴐)를 따라갈 관원들도 깨끗이 재계하고 정침(正寢)에서 하룻밤을 잔다.

배설은 하루 전에 시작된다. 우선 전(殿)에 입장하기 전에 준비하는 곳에 필요한 대차, 소차, 관원들의 자리를 설치한다. 또 전의 안팎을 청소하고 상왕과 왕의 판위(版位)를 비롯하여 의례를 행할 자리를 정한다. 축판에 상왕이 미리 서명하여 전사(殿司)에게 넘겨준다.

진설도 하루 전에 사당문을 열고 청소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제사 당일 제사 드리기 전에 축판을 신위 오른편에 놓고, 향로·향합·초·제기를 진설하고, 전소(奠所)를 지게문 밖에 설치한다.

제사 준비를 다 마치면 행사 전에 전사가 사당문을 열고 신주 모신 곳의 휘장을 턴다. 상왕과 왕이 대차에 도착하면, 제물을 다 담아 올리고, 서운관(書雲觀)에서 시간을 아뢰고 제사에 참여하는 관원들이 자리를 잡으면 왕에게 아뢴 후 동쪽 문으로 인도하여 들어온다. 이로써 제향에 참여할 모든 기물과 사람이 자리를 잡고 제향을 올릴 준비가 완료된다.

제향의 첫 번째 절차는 사배례이다. 먼저 상왕과 왕이 판위에 서서 사배하고, 나머지 사람들도 이어 사배한다. 이어 삼헌의 절차가 진행된다. 초헌관(初獻官)인 상왕이 3번 향을 올리고 술을 올린 후 절하고 일어나 꿇어앉아 축문 읽기를 바치면 다시 엎드렸다가 일어나 2번 절한다. 상왕에 이어 아헌관인 왕과 종헌관(終獻官)이 향, 술, 축문 의절을 행하고 물러난다.

다음 절차는 음복이다. 음복하는 자리를 앞 기둥 밖 동편에 설치하고 술잔에 음복할 술을 따라 상왕에게 주면 상왕이 꿇어앉아 마신 후 절하고 물러난다.

마지막으로 상왕 이하 관원들이 재배와 사배례를 순서대로 행하면 예식이 끝난다. 상왕과 왕이 대차로 돌아가고 종헌관이 나가면, 나머지 관원들도 순서대로 나간다. 전사관(典祀官)과 전사가 각기 소속 관원을 데리고 제물을 거두는 철변두를 행하고 지게문을 닫고 물러난다. 축판은 구덩이에 묻는데 이를 망예라고 한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춘관통고(春官通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