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령(戒令)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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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계령 |
한글표제 | 계령 |
한자표제 | 戒令 |
상위어 | 흉례(凶禮) |
관련어 | 빈전(殯殿), 성빈(成殯) |
분야 | 왕실/왕실의례/흉례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이욱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계령(戒令) |
국상(國喪)이 발생하였을 때 관인이나 백성이 지켜야 할 규율.
개설
계령은 『세종실록』「오례」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실린 흉례(凶禮)의 규정 중 하나이다. 이 계령조에 따라 국상이 발생하였을 때 병조(兵曹), 예조(禮曹), 이조(吏曹)와 임시로 설치되는 도감(都監)들의 할 일을 정하고, 관민들의 규제 사항을 단속하였다.
내용 및 특징
계령에 따르면, 국상이 나면 병조에서는 곧바로 여러 위(衛)를 통솔하여 궁궐의 내외문과 도성 주변 호위를 하고, 예조에서는 상사(喪事)에 관한 일을 의정부(議政府)에 보고하고 각 관서에 공문을 보내어 각 직무를 받들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조에서는 의정부에 보고하여 빈전(殯殿), 국장(國葬), 산릉(山陵)의 세 도감을 설치해야 한다.
이런 계령 중에서 『조선왕조실록』에서 자주 언급되는 내용은 국상 중 지켜야 할 금령(禁令)이다. 국상을 당하면 제사·음악·혼사(婚事)를 중지하고, 시장을 닫았으며, 도살을 금지하였다. 이런 제재는 국상의 규모에 따라 그 기간이 달랐다. 왕의 상을 기준으로 말하면 승하하는 순간부터 국가의 모든 제사가 곧바로 중지되었다. 이후 빈전을 차리면 종묘보다 높은 사직제(社稷祭)만 거행하고, 사직 외 제사는 졸곡(卒哭) 후에 다시 거행하였다.
상기(喪期) 동안에는 제향 때 음악을 사용하지 못하였고, 대사(大祀)의 제사인 경우에만 졸곡 이후 제향에 음악을 연주하였다. 한편, 국상이 나면 가례(嘉禮)인 혼인도 금지하였다. 다만 졸곡 이후 3일 동안 임시변통으로 혼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졸곡 전에는 도살을 금지하였다.
변천
계령의 금지 조항은 조선후기에 대상(大喪)과 소상(小喪)의 구분 속에서 보다 세분화되어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에 수록되었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국립문화재연구소, 『국역 국조상례보편』, 민속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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