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순옹주(慶順翁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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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82년(성종 13)~? = ?]. 조선의 제9대 임금인 성종(成宗)의 딸로 옹주.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어머니는 청송 심씨(靑松沈氏)심말동(沈末同)의 딸인 심숙용(沈淑容)이다. 친동생은 숙혜옹주(淑惠翁主), 이성군(利城君), 영산군(寧山君)이다. 부마는 의령 남씨(宜寧南氏)의성위(宜城尉)남치원(南致元)이다.

출생과 혼인생활

경순옹주(慶順翁主)는 1482년(성종 13) 성종과 심숙용 사이의 2남 2녀 가운데 장녀로 태어났다. 1495년(연산군 1) 경순옹주는 14세의 나이로 부사(府使)를 지낸 남회(南薈)의 아들 남치원과 혼인하였으며, 이에 따라 남치원은 의성위에 봉해졌다.(『연산군일기』 1년 3월 6일)

이후 남치원은 연산군(燕山君)의 깊은 총애를 받았는데, 1506년(연산군 12)에는 미녀와 준마(駿馬) 등을 모집하기 위하여 평안도에 파견되기도 하였다.(『연산군일기』 7년 7월 29일),(『연산군일기』 12년 5월 22일) <중종반정(中宗反正)> 이후에도 별 탈 없이 부마로서의 지위를 누리던 남치원은 1516년(중종 11) 궁에서 잠시 방출한 궁녀를 첩으로 삼아 문제가 되었다.(『중종실록』 11년 12월 22일) 조정의 여론은 그의 처형을 주장하였으나, 중종의 보호로 그에 대한 처벌은 유배로 그쳤다.(『중종실록』 11년 12월 26일),(『중종실록』 11년 12월 26일),(『중종실록』 11년 12월 27일),(『중종실록』 12년 1월 18일)

후손

경순옹주는 남치원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1남 남기(南沂)는 1546년(명종 1) 정흥종(鄭興宗)이 명종과 인순왕후(仁順王后)의 사주를 갖고 점을 치면서 인생 후반부가 좋지 않다는 말을 하였다는 것이 문제가 된 <정흥종의 옥사>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명종실록』 1년 8월 13일),[『연려실기술』 권11 「명종조고사본말」] 이때 명종은 어머니 경순옹주의 봉사는 다른 사람이 맡도록 하였고, 남기의 자손들은 『선원록(璿源錄)』에서 삭제하였다.(『명종실록』 1년 8월 14일),(『명종실록』 1년 9월 10일) 1녀는 세종(世宗)의 아들인 밀성군(密城君)이침(李琛)의 증손자 덕평군(德平君)이항(李沆)과 혼인하였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지두환, 『성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7.
  • 류정월, 『오래된 운명의 숲을 지나다』, 이숲,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