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민편(警民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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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519년(중종 14) 김정국(金正國, 1485~1541)이 황해도 관찰사로 있을 때 인륜(人倫)과 법제(法制)에 관한 계몽서적으로 편찬한 교양서다.

개설

이 책은 인륜의 귀함과 법제의 내용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펴낸 것으로, 부모·부부·형제·자매·족친(族親)·노주(奴主)·인리(隣里)·투구(鬪毆)·권업(勸業)·저적(儲積)·사위(詐僞)·범간(犯奸)·도적·살인 등 13항목으로 구분하여 백성들을 경계(警戒)하기 위해 편찬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국가적인 차원에서 교화서를 작성하여 보급하였으며, 16세기 초반 김정국이 만들었던 『경민편』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수령의 지방 통치에 필요한 내용을 풍부히 담고 있었는데, 17세기 중반 서인(西人) 정부에서 재간행하였다. 이 사실은 개인이 만들어, 활용했던 교화서를 국가 차원에서 보급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 책은 황해도 지역이나 함경도, 제주도 등 유교적 문화가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강력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보급되었다.

18세기 중반에 탕평정치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정부에서는 이 책을 지방의 면(面)·리(里)까지 향촌민의 교화서로 보급하려고 하였다. 공적 조직을 통하여, 『경민편』의 내용을 교육하려는 취지였다. 이 책을 향촌민 교육에 활용하자는 정책은 『목민가(牧民攷)』·『목강(牧綱)』 등 18, 9세기에 만들어진 목민서에 반영되었다. 이들 책에서는 『경민편』을 학교 진흥과 풍속 교정을 위한 교재로 인정하고, 활용하려 하였다.

서지 사항

1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중간본)이다. 버클리대학 본 1책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반곽(半郭)은 20.0×15.2cm이며, 10행 20자의 유계(有界)이다. 판심은 내향혼엽화문어미(內向混葉花紋魚尾)를 갖추고 있으며, 크기는 29.1×20cm이다. 규장각,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일본 동경교육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현재 원간본은 전하지 않고, 임진왜란 직전의 중간본 등에 의해 그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간행목적은 서문에서 밝히기를 형벌의 적용보다는 인륜의 중함을 모르는 백성들을 교화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내용은 인륜의 기본에 관계되면서도, 백성이 범하기 쉬운 덕목을 13 조목으로 나누어, 조목마다 윤리적인 해설을 붙이고, 불륜하였을 때 적용되는 벌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인륜은 전통적인 『소학』류의 내용이나 삼강오륜의 덕목과는 차이가 있다. 즉 군신·붕우·장유 등의 덕목이 탈락되고, 그 대신 향촌질서의 유지에 필요한 족친·노주·인리·투구(鬪毆)·권업(勸業) 등의 항목이 추가되어 향촌 현실과 부합되는 덕목으로 변형되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은 향촌 내부에서 엄격한 상하존비(上下尊卑)의 구별을 가능하게 해주는 유교적 본말론(本末論)이 이념적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향약과 내용상 비슷하여 향약보급의 전단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간본 원문에는 차자(借字)로 구결(口訣)을 표시하였고, 이어 한글로 풀이해 놓은 체재인데, 그의 형 김안국(金安國)이 언해하여 간행한 『여씨향약(呂氏鄕約)』과 『정속언해(正俗諺解)』를 따른 것이다.

중간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원간본의 체재를 이어받은 것으로 1579년(선조 12)에 간행되었으며, 당시의 경상도 관찰사였던 허엽(許曄)의 중간 서문(序文)이 있어서, 간행경위를 알려주고 있다. 또 하나는 완남부원군(完南府院君) 이후원(李厚源)이 1658년(효종 9)경에 간행한 책(규장각 도서)과 그 복각본이 여기에 속한다. 이후원은 원간본은 못 보고 한문만으로 된 사본을 구하여 번역하였으므로, 그 체재와 내용이 매우 특이하다. 즉 한글로 구결을 달았을 뿐만 아니라, 번역도 첫째 계통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이루어져 있다. 내용도 경민편 이외에 송나라 진영(陳靈)의 『선거권유문(仙居勸諭文)』 등의 산문과, 정철(鄭澈)의 『훈민가』를 『경민편』과 같은 체재로 첨가해 놓은 것이다. 이 계통에 속하는 이본은 1720년대 평안도 관찰사송인명(宋寅明)이 평안도에서 간행한 것을 비롯하여, 1730년(영조 6)의 상주판, 1748년(영조 24)의 남원판과 전주판 등이 알려져 있다. 결국, 첫째 계통은 중세 말기의 국어, 둘째 계통은 근대국어 연구의 자료가 된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의 활용은 이 시기 상민들의 의식 성장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컸다. 낮은 차원에서나마 유교규범을 익히는 것은 양반사대부들이 전유하던 유교적 인문세계에 들어가는 일이었는데, 『경민편』의 유교 규범을 익히는 과정에서 이들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계를 보다 넓게 인식할 수 있는 힘을 키워 갔을 것이다. 조선후기 이 책과 같은 교육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문을 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참고문헌

  • 고영진, 『조선중기 예학사상사』, 한길사, 1995.
  • 김용덕, 『韓國制度史硏究』, 일조각, 1983.
  • 박성의, 「「警民編」과 「訓民歌」 小考」, 『어문논집』 제10권, 민족어문학회, 1967.
  • 안병희, 「<二倫行實圖>·<警民編解題>」, 『東洋學叢書』 6,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78.
  • 정순목, 『韓國儒學敎育資料集解』 Ⅰ, 학문사, 1983.
  • 정호훈, 「16·7세기 『警民編』 간행의 추이와 그 성격」, 『한국사상사학』 제26집, 한국사상사학회,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