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루(更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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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증가 또는 감소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조선시대의 물시계.

개설

조선시대에 물시계를 지칭하여 경루(更漏)라고 하였다. 물시계의 기원은 오래되지만, 조선시대에는 건국 초인 태조 때부터 사용되었다(『태조실록』 7년 윤5월 10일). 1398년(태조 7)에 종루 근처에 금루방(禁漏房)이라는 관청을 두고 물시계인 경루를 설치하여 백성들이 시간을 알 수 있게 하였다. 물시계는 해시계와 달리 밤낮 없이 시간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항상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결국 세종대에 이르러 물의 부력과 낙하하는 공의 힘을 이용하여 저절로 시간을 알리는 자동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가 1434년 장영실에 의해 만들어졌다.

연원

물시계는 기원전 7세기경에 중국에서 처음 발명되었고 누각(漏刻), 또는 경루(更漏)라 불렸다. 해시계와 달리 물시계는 매일 물을 갈아주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고 항상 사람이 지키고 앉아 시간을 재어야 했다. 한밤중에 잠시라도 졸거나 급하게 자리를 비우게 되면 정확한 시간 측정이나 알려주어야 되는 시간을 놓칠 수 있었다.

결국 물시계의 불편함은 사람이 일일이 쳐다보며 측정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움직이고 시보를 알려주는 자동 물시계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중국 송나라소송(蘇頌)이 1091년 무렵 물레바퀴로 돌아가는 거대한 자동물시계를 발명했다. 그러나 그 장치들이 너무 복잡하여 그가 죽은 뒤에는 다시 만들지 못했고, 12~13세기 아라비아 사람들이 쇠로 만든 공이 굴러 떨어지면서 종과 북을 쳐서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는 자동물시계를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물시계를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삼국사기』 신라조에 “신라 성덕 17년(718) 여름 6월 비로소 누각을 만들었다”는 내용과 “신라 경덕왕 8년(749) 봄 3월에 천문박사 1명과 누각박사(漏刻博士) 6명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누각은 물시계를 의미하는데, 신라시대 물시계가 어떤 모양인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록이 없다. 삼국 통일 이후 신라는 당과의 국제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정확한 시간이 이전보다 더욱 필요했을 것이고, 이 필요성에 의해 천문학이 발전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물시계의 존재는 낮 시간뿐만 아니라 밤의 시간 측정에도 힘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경덕왕 때 천문박사 외에도 물시계를 관리하는 누각박사를 무려 6명이나 두고 있는데, 해시계와 달리 물시계는 많은 양의 물을 제때에 갈고 채워야 하는 번거로움과 함께 밤에 당직 근무를 서야했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필요로 했다. 신라시대 물시계는 정확히 알 수 없고, 다만 중국 당나라의 물시계를 본떴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신라에 이어 고려시대에도 시계의 중요성은 컸다. 신라시대 누각박사와 같이 물시계를 담당하는 관원이 있었다. 『고려사』「백관지」에 따르면, 고려에는 설호정(苛壺正)과 장루(掌漏)와 같이 누각을 전담한 관리가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선명력과 수시력에 따라 물시계로 낮과 밤의 길이를 측정했다는 기록도 『고려사』에 전한다. 그러나 고려시대도 신라와 마찬가지로 어떤 물시계를 사용했는지 현재 남아 있는 유물이 없어 알 수가 없다.

형태

일반적으로 물시계는 한 물통에서 다른 물통으로 흐르는 물의 양이 시간의 흐름과 정비례하게 만들어졌는데 물이 고이는 통에 들어 있는 시간 잣대가 떠오르면서 시간눈금을 가리킨다.

조선 세종대 장영실이 만든 대표적인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는 시간 잣대가 올라가는 힘으로 구리 구슬을 굴러 떨어지게 하여 지렛대의 힘을 빌려 로봇인형이 자동으로 북과 징을 치고 시간을 알리게 하는 장치였다.

보루각(報漏閣) 안에 설치되었던 자격루는 높은 곳에서 물을 공급하는 물통(파수호) 4개를 놓고 그 밑에 물 받는 물통(수수호) 2개를 놓았는데 수수호에 고이는 물이 점점 수위가 높아지면서 시간잣대가 위로 떠오르게 되고 그것이 쇳덩어리를 받쳐 들고 있는 받침판을 밀어서 구리 구슬이 굴러 떨어지게 하였다. 종래 중국의 물시계는 수수호가 1개였으나 자격루는 수수호가 2개이다.

자격루에 이어 장영실이 만든 또 하나의 자동 물시계인 옥루(흠경각루)는 지금 남아 있지 않아 그 형태를 완벽히 알 수 없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옥루는 자격루와 같은 물시계 장치뿐 만아니라 태양의 운행 등 천체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까지 있는 천문시계이자, 12신, 4신, 옥녀 등의 각종 시보인형이 등장하여 시간을 알려 주는 자동 종합물시계였다.

옥루 기계장치의 핵심은 ‘옥루기륜’이며, 이를 고안한 사람은 장영실과 이천(李蕆)이다. 옥루기륜은 겉에서는 보이지 않고 속에 들어가 있는 장치였다. 따라서 겉으로만 보면 옥루는 산모양의 땅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태양과, 그에 따라 시간을 알려주는 각종 인형들이 파노라마처럼 움직이는 천상과 지상의 공간이었다.

옥루에는 약 145㎝인 높이 7자가 되는 종이로 만든 산모형이 있는데 이것은 ‘우주’를 상징한다. 거기에 탄환만 한 크기의 ‘태양’이 매일 이 산을 한 바퀴씩 돌게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실지 태양이 계절마다 높이가 달라지듯이 그 높이도 달라지게 하였다고 한다. 인형 모형을 보면, 선녀 모습을 한 ‘옥녀’ 인형 4개, 사신(司辰)과 무사 모습을 한 인형 3개, 그리고 12지신의 동물모형들과 4신(四神)이 자동으로 움직이며 시간을 알려준다. 하루 12시간 중 4개의 옥녀 인형과 4신들이 각각 3시진(時辰)씩 분담하여 매 시간마다 옥녀는 방울을 흔들게 하고 ‘4신’은 90°씩 돌게 하였다. 따라서 4신은 4시간 만에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돈다. 산의 남쪽 기슭에 세운 사신이 해당한 시간이 되면 종을 치는 무사를 향하며 무사는 사신을 향하고 있다가 지시를 받고 종을 친다. 이런 식으로 매 경, 매 점마다 북, 징을 치는 무사들이 움직이도록 고안되었다. 십이지신을 본뜬 12개의 동물모형들은 그에 대응한 시간이 되면 각각 엎드렸다가 일어나는데, 장영실은 이 모든 것이 옥루기륜이라는 장치에 의해 움직이게 하였다. 옥루의 기계장치들은 설명한 바와 같이 매우 정교하고 기묘하여 우리나라 천문기기 발전사의 자랑이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변천

국가 통치에서 낮 시간보다 밤 시간의 통제는 중요한 것이었다. 해시계뿐만 아니라 물시계 즉 경루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인정과 파루 시간을 알려주어 통치를 원활히 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한 물시계가 필요했다. 조선 세종대에 자동물시계인 자격루의 제작으로 조선은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간을 알려줄 수 있었다. 그러나 자격루는 여러 번 수리되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 이용되기도 하였다. 1434년에 만든 자격루는 1455년에 고장 나서 못 쓰다가 1469년에 수리되어 다시 이용되었으며 1505년에는 창덕궁으로 이관되었다가 다시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성종은 “보루각이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는데 이런 귀중한 것이 재변에 불타버리면 그 구조를 찾아볼 길이 없게 되므로 경복궁 안에만 둘 것이 아니라 창덕궁에도 하나 더 설치해야겠다”고 하였다(『성종실록』 18년 2월 24일). 1536년(중종 30) 6월에 새 자격루가 하나 만들어져 창덕궁에 설치되었다. 그 구조는 그전 것과 거의 같은 것이지만 초경 3점에 종을 28번 치는 인경과 5경 3점에 33번 치는 파루까지도 자동적으로 알려주게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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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