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부(居昌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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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 기원하여 현재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거창(居昌)에는 신라시대에 처음 고을이 설치되었으며, 거창이라는 명칭은 신라 경덕왕 때부터 사용되었다. 신라시대에는 거창군으로 두 곳의 영현(領縣)을 거느렸으며, 고려시대에는 거창현(居昌縣)이 되어 합주(陜州)에 속했다. 1172년(고려 명종 2)에 최초로 감무(監務)가 파견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현감(縣監)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495년(연산군 1)에 거창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504년(중종 1)에 다시 거창현으로 강등되었으며, 1729년(영조 5)에 거창부(居昌府)로 승격되어 도호부사(都護府使)가 파견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거창군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거창부는 신라시대 거열군(居烈郡)에서 기원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거창군으로 개명하였다. 신라 거창군은 9주(九州) 중 강주(康州)에 속했으며, 여선현(餘善縣)과 함음현(咸陰縣)의 2개 영현(領縣)을 거느렸다. 신라의 거창군은 거창현이 되어 그대로 고려로 이어졌다. 1018년(고려 현종 9)에는 합주에 내속하여 합주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에 감무를 처음으로 파견하였다. 고려말기에 왜구의 침략으로 인해 거제도에 있던 거제현(巨濟縣) 관아가 거창현의 가조현(加祚縣) 지역으로 임시로 옮겨 왔다. 조선초기인 1414년(태종 14)에 거제와 거창을 통합하여 제창현(濟昌縣)을 만들었다가, 1415년(태종 15)에 다시 분리하여 거창현이 복구되었다. 왜구의 침략 위협이 줄어들자 거제현 관아는 1422년(세종 4)에 거제도로 돌아갔다.

조직 및 역할

신라시대에 거창군에는 외관으로 태수(太守)가 파견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거창현이 되어 합주의 속현으로서 기능하였다. 비록 중앙에서 거창에 지방관을 파견하지는 않았지만, 거창현에는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읍사에서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으며, 지합주사(知陜州事)의 관할하에 있었다. 거창현에는 1172년에 감무가 처음 설치되었고, 이후에 지방관이 계속 파견되었다. 가조현은 고려시대에 거창과 마찬가지로 합주의 속현이었는데, 고려후기에 거창의 속현이 되었다. 하지만 거제의 주민들이 고려말기부터 조선초기까지 가조현 지역에 임시로 거주하기도 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거창현에는 종6품의 현감이 파견되었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1495년에 거창군으로 승격하여 군수(郡守)와 훈도(訓導)가 각 1인씩 파견되었으나, 1504년(중종 1)에 다시 거창현으로 강등되고 현감이 파견되었다. 거창부로 승격한 이후의 기록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3품의 무관이 도호부사로 임명되었고, 그 휘하에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2명, 군관(軍官) 70명, 인리(人吏) 68명, 지인(知印) 24명, 사령(使令) 27명, 군뢰(軍牢) 7명, 관노(官奴) 36명, 관비(官婢) 18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종3품의 무관이 도호부사로 임명된다고 기재되었다.

변천

거창현은 1495년에 거창군으로 승격하였다. 연산군의 부인인 신씨(愼氏)의 관향(貫鄕)이었기 때문이다(『연산군일기』 1년 7월 2일). 하지만 1506년의 중종반정 직후 거창군을 다시 거창현으로 강등하였다(『중종실록』 1년 9월 19일). 1658년(효종 9)에는 노비가 주인을 살해했다는 이유로 거창현을 폐지하고 안음현(安陰縣)에 소속시켰다가, 1660년(현종 1)에 다시 거창현을 복구하였다. 1728년(영조 4)에 정희량(鄭希亮)의 변란이 일어나, 1729년(영조 5)에 안음현을 폐지하고 그 절반을 거창현에 소속시키고 거창현을 거창부로 승격시켰다. 안음현의 나머지 절반은 함양(咸陽)에 소속시켰다. 이후 1736년(영조 12)에 안음현은 복구되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거창부는 1788년(정조 12)에 거창현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거창현은 1799년(정조 23)에 다시 거창부로 승격하였다(『정조실록』 23년 6월 7일). 1895년(고종 32)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진주부(晉州府)에 속하여 거창군이 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거창군은 경상남도 소속의 3등군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거창군은 경상남도 소속으로 현재까지 이어진다. 조선시대에 거창현의 관아가 위치한 곳은 현재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중앙리 일원이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