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읍성(巨濟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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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제시 신현면 고현리에 조성한 성이며 읍의 치소(治所)로 사용됨.

개설

고려말 왜구의 침입으로 거제현(巨濟縣)은 지금의 거창에 해당하는 가조현과 함께 진주목으로 이전하였고, 조선초기 1422년(세종 4) 거제현이 복군되면서 신현읍 수월리로 옮겼다가 식수가 부족하고 장소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지금의 거제시 사등면 사등리에 해당하는 사등성으로 옮겨진다. 이후 1432년(세종 14) 지금의 거제 시청이 위치한 고정부곡(古丁部曲)에 거제읍성을 축성하게 된다. 이후 1489년(성종 20) 거제부로 승격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거제읍성이 무너지고 1664년(현종 5) 거제현을 현재의 거제면으로 이전하고 거제읍성을 고현성(古縣城)이라 칭하게 된다.

위치 및 용도

경상남도 거제시 신현면 고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현종 때까지 거제군의 행정을 맡아보던 치소로 사용되었다.

변천 및 현황

고려말 왜구를 피하여 거창으로 피난을 간 거제도민이 조선조 세종 때에 돌아와 처음 수월리(水月里)와 사등성(沙等城)에 머물렀으나 주민이 너무 많고 성이 비좁아 다시 거제읍성을 크게 쌓아 옮겼으며 현종 때까지 거제군의 치소로 사용했다.

거제읍성의 축성 기록을 살펴보면 “이달에 경상도 거제현성을 쌓았다.”(『문종실록』 1년 11월 30일), “겸지병조사(兼知兵曹使)김순(金淳)을 경상도에 보내 거제성 쌓는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단종실록』 1년 8월 26일)라고 되어 있는데, 이러한 기사를 고려해 보면 거제읍성은 1451년(문종 1)부터 1453년(단종 1) 사이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에게 함락당하였으며 한국전쟁 때, UN군 포로수용소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형태

성곽의 형태와 구조는 계룡산 기슭의 동쪽으로 뻗은 설상대지(舌狀臺地) 위에 평면이 배 모양으로 축조된 석축성으로, 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친 성문을 방어하는 작은 성인 삼문(三門) 옹성(甕城)과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인 치(雉), 성 밖으로 둘러 판 못인 해자(垓字)를 구비한 전형적인 조선전기의 읍성 구조를 갖추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가 3,038척(약 920m)이고 높이가 13척(약 4m)이라고 하였는데, 그 크기는 남해안의 읍성 가운데 중간 정도에 해당하며 높이는 큰 편에 속한다. 현재 상태 파악이 가능한 성벽은 길이가 818m인데 평균 높이 2m, 너비 5.5m가량으로 성안은 경작지나 주택지로 사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전국읍성조사』, 문화재관리국,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