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관유생(居館儒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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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에 기숙하며 공부하는 유생.

개설

성균관의 정원은 200명이며, 생원진사시의 합격자에게 입학 자격을 주었다. 생원·진사로 정원이 채워지지 않을 경우에 사학 생도나 문음 자제 중에서 보충하였다.

내용 및 특징

성균관에 기숙하며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은 생원·진사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졌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성균관의 정원은 200명이며, 생원·진사가 부족할 경우 사부학당의 생도 중에서 15세 이상으로 『소학』, 사서(四書), 1경(經)에 통한 자, 음직(蔭職)을 받았거나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의 적자(嫡子) 유음적자(有蔭嫡子) 중에 『소학』에 통한 자, 문과와 생원진사시의 초시에 합격한 자를 뽑아서 보충하였다.

성균관의 학사(學舍)에는 상재(上齋)와 하재(下齋)가 있는데, 상재에는 생원시와 진사시에서 합격한 유생들이 기숙하고, 하재에는 사학의 승보시(陞補試)에서 취재(取才)로 올라온 유생들이 거처하였다. 생원과 진사를 상재 또는 상사(上舍)라고 하고 그 밖의 유생들은 기재(寄齋)라 하였다(『명종실록』 12년 1월 26일).

성균관 유생이 원점(圓點) 300점을 따면 문과 초시인 관시(館試)와 향시(鄕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태종실록』 17년 윤5월 14일). 아침저녁 식사에 모두 참여하면 원점 1점을 부여하였다. 원점 300점이란 300일간 성균관에 기숙하면서 수학하는 것을 말하였다.

변천

임진왜란 이후에는 거관유생의 수가 적어 원점 300점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시험 때에 이르러 사정에 따라 하향 조정하여 실시하였다. 『속대전』에서 50점으로 법제화되었다. 성균관의 정원도 축소되어 『속대전』에는 상재생인 생원·진사 106명, 하재생인 학생 20명, 총 126명으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