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문표신(開門標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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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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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개문표신 |
한글표제 | 개문표신 |
한자표제 | 開門標信 |
하위어 | 개문우부(開門右符), 개문좌부(開門左符) |
관련어 | 내지표신(內旨標信), 선전표신(宣傳標信), 유문(留門), 통행표신(通行標信), 호군(護軍), 휘지표신(徽旨標信) |
분야 | 정치/행정/인신·패·표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이선희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개문표신(開門標信)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선조실록』 34년 2월 27일 |
정해진 시간 외에 궁궐이나 도성의 문을 여는 데 쓰던 표신(標信).
내용
표신은 상아로 만들어 궁중에 보관하고, 군무 및 궁궐 문 또는 도성 문의 개폐 등의 사무에 사용하였다. 도성 사대문은 한양의 수비를 위해 저녁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닫혀있었다. 문의 개폐를 관리하기 위해 선전관이 선전표신(宣傳標信)을, 또 한 명의 선전관이 개문표신(開門標信)을 지니고 있었으며, 금군은 각 대문의 정해진 시간의 통부(通符)를 가지고 있었다. 닫힌 문을 열기 위해서는 먼저 개문표신으로 궁궐 문을 연 뒤 각각 선전표신과 통부를 가진 사람이 모두 성문에 이르는 것을 기다려 자물쇠를 열어야 했다. 좌우의 사잇문을 열 때는 개문표신만을 사용하였으며, 대문을 계속 잠그지 않은 채 두어야 할 때는 선전표신만을 사용하였다.
용례
臺諫以出仕事來詣 而開門標信 不爲入啓出給 使臺諫達夜坐在(『선조실록』 34년 2월 27일)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만기요람(萬機要覽)』
관계망